울산바위 서봉에서
인생을 살면서 계획하고 예상한 그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될까?
계획하고 예상한대로 된다고 해서 꼭 최고라고 말 할 수는 없다.
때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더 큰 행복을 줄때도 있는데 어쩌면 오늘이 그날인지도 모르겠다.
천화대를 갈 계획이었지만 호우특보가 발효되어 입산통제 때문에
급하게 코스를 변경해 찿은 울산바위 서봉이 조연이 아닌 주연이다.
비그친 울산바위 서봉은 주연이 되기에 충분하다.
서락산 울산바위 서봉-서락에서 비를 맞다.
코스 : 소공원~비선대~계조암~울산바위 서봉
꽤 오래전에(8~9년 되었을까?) 천화대에서 보았던 내설악의 환상적인 운무는 잊을수가 없다.
그 오래전의 멋진 풍경을 다시 볼수 있을까?
장마가 시작되었으니 운이 좋다면 다시 볼 수 있을것 같아 천화대를 산행을 계획한다.
일기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반갑고 고마운 장맛비지만 주말에 비가 내리는 것은 그리 반갑지 않다.
금요일까지 비가 오고 토요일에 개는 것이 내가 바라는 최고의 날씨다.
그래야 내가 보고 싶어하는 설악의 멋진 운무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것이다.
어제 확인한 일기예보는 오전부터 오후까지 비가 예보되어있지만
60%의 강수 확률과 1~4mm의 강우량이었는데 새벽에 일어나 확인하니 5~10mm의 강수량이다.
리스크가 있어야 절경을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출발이다.
교문리에서 함산할 산우를 Pick-up해서 서울~양양 고속도를 달린다.
다행히 내린천 휴게소에 도착할때까지 우려했던 비는 내리지 않는다.
내린천휴게소에 들려 간단히 아침을 먹는데 밤새 내린 비에 젖어있는 창밖으로 안개가 피어 오른다.
소공원에 도착하니 우려했던 비는 내리지 않고 운무가 산허리를 돌아 나간다.
와우~하늘까지 군데군데 파란 잉크빛이다.
어쩌면 오늘 대대박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천화대를 향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꿈은 산산조각나고 만다.
신흥사 밑에 차를 세우고 서둘러 비선대로 향한다.
지난주에 다녀온 세존봉이 반갑다.
쌍천에서는 운무가 흘러 내리며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다.
비선대에 가까워지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구라청의 예보가 또다시 틀려 비그친 천화대를 만나고 싶다는 꿈은 사라졌지만 우중산행을 각오하고 왔으니 비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오랜만의 우중산행이 반갑다.
비선대에 도착하자 비는 더 거세게 내린다.
비선교초소위의 전광판의 입산통제안내가 굵은 빗줄기에 선명하고 하산을 종용하는 국공이 야속하다.
호우특보로 여기부가 터 입산통제다.
그렇게까지 위험해보이지 않아 진행을 하고 싶지만 국공조카가 지키고 있으니 방법없이 돌아선다.
내가 그토록 보고 싶은 설악의 운무다.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매주 보러 가다 보면 언젠가는 보여주지 않을까?
이런 운무를 만난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까?
토왕성폭포를 보며 노적봉을 오를까?
비내리는 달마산으로 갈까?
오늘은 울산바위 서봉으로 천화개를 대신하기로 결정하고 다시 돌아서 내려 간다.
신흥사 주변에 핀 원추리꽃을 담아보며 쓰린속을 달랜다.
빗물을 머금은 노란 원추리꽃은 속절없이 넘무 예쁘다.
잠시 잦아들었던 비가 신흥사를 지날무렵 더욱 세차게 내린다.
신흥사에서 비를 피하며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린다.
산사에서 바라보는 비... 그렇게 나쁘지 않다.
조금 잦아들기는 했지만 서봉으로 가는 내내 비는 그치지 않고 내린다.
계조암을 지나 서봉 등로로 들어서서 막걸리로 갈증을 달래며 쉬어간다.
지금 시간이면...
서봉 밑 석문에 자리를 펴고 비를 피하며 야채전에 막걸리로 날궂이를 하니 고향집이 생각난다.
비가 오면 부추전이나 호박전을 종종 부쳐주시곤 했다.
대청마루에 앉아 홍천강을 내다보며 먹던 그 시절이 그립다.
점심을 먹고나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안개도 물러서니 이보다 더 행복 할 수가 없다.
멀리 보이는 토왕성폭포도 가뭄에 신음하던 모습이 아니다.
모처럼 시원한 물줄기를 토해내며 설악산 최고 폭포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아마도 화채능선에는 더 많은 비가 내린 것 같다. 토왕성폭포를 갈걸 그랬나?
아니다. 오늘은 이곳 울산바위 서봉으로 코스를 정한것이 행운이다.
비그친 울산바위 서봉에서 바라보는 서락과 속초와 고성의 풍경은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오랜만에 오른 서봉에는 달콤한 바람이 분다.
멀리 고성 앞바다도 비가 그친 말끔한 모습으로 산객을 마증한다.
비개인 속초는 마치 유럽의 멋진 휴양도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속초가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누가 쌓았는지 일출 전망바위 위에 돌탑이 있다.
서봉뒤 미시령과 상봉은 끊임없이 안갯속에 있다.
오를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가고 싶다는 생각도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오늘 울산바위 서봉은 온전히 내것이다.
바람에 모자도 날아가고 배낭커버도 속절없이 날아갔다.
그래 내 근심과 걱정도 이 바람에 날려보내자^
"젊은 날의 슬픔"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는 등대시호를 예쁘게 담고 싶지만 바람이 허락하지를 않는다.
등대시호를 어렵게 담고 서봉 정상으로 오른다.
서봉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울산바위의 모습은 더 멋져 보인다.
서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더 멋있지만 많은 산객들이 아래까지만 방문하고는 돌아간다.
눈높이가 비슷하니 당겨서 담아볼까?
멀리 동봉의 계단과 데크가 눈에 들어오고 달마봉도 멀리 있다.
바람이 불어도 그저 행복하다.
내려서는 아쉬움을 다시 담아본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찿아 동해바다에서 찬란하게 떠오르는 찬란한 일출을 맞고 싶다.
그러고 보니 서봉 일출은 물론이고 선연재 일출을 본지도 꽤 오래 되었다.
내려서며 또 담는 것을 보면 오늘 정말 행복한가 보다,
수십번을 본다고... 밤새워본다고... 그래도 또 보고 싶을 것 같다.
왜 비박짐을 지고 오지 않았는지 원망스럽다.
산객을 보내는 것이 아쉬웠나보다. 내려서는 산객에게 마지막으로 운무를 보여준다.
밀어서 떨어트려볼까? ㅋㅋ
올라갈때는 비가 내렸지만 비가 그쳤으니 흔들바위도 들려서 가자.
비를 맞은 울산바위는 오늘 유독 하얀 얼굴을 하고 있다.
외국인 수명도 소란스러움으로 행복을 만끽하며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안양암 조금 못미친곳에서 시원스런 알탕으로 오늘의 피로를 씻어낸다.
신흥사를 돌아 나가는 산객의 뒷모습이 궁금했는지 울산바위가 빼꼼 얼굴을 내민다.
구라청이라고 욕을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오보때문에 행복한 경우도 있다.
구라청의 물폭탄 예보에 고속도로도 제값을 오랜만에 한다.
설악에서 집까지 2시간 조금 더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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