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서락산-겨울 설악산의 일박이일 보고서

Edgar. Yun 2018. 12. 18. 22:52

대청봉 일출

공룡능선을 버리고 선택한 대청봉 일출이 대박이다.

일출을 만날때마다 스토리텔링이 없는 일출을 없다고 생각하지만

오늘의 일출은 마치 나를 조명하는듯하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서락산-겨울 서락의 일박이일 보고서

일시 : 2018년 12월 17~8일 월/화요일

코스 : 백담사~오세암~봉정암~소청산장~대청봉~수렴동 산장


내가 도망칠수 있는 곳은 설악이 유일한지 모르겠다. 

힘이 들어도 너무 힘이 들어 견디기 어려운 요즈음 나의 일상이었다.

겨울 설악이라 산객이 다른 계절에 비해 없지만

더 산객이 없는 설악이 어쩌면 더 큰 위로를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월요일에 설악으로 떠난다.


용대리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 백담사로 출발을 한다.

도로 결빙을 이유로 내년 봄까지는 셔틀버스가 운행을 하지 않으니 7km 가까운 거리를 걸어 올라야 한다.

도로옆의 백담사 계곡을 바라보며 걷지만 사실 그리 걷고 싶은 길은 아니다.

한시간 반이 걸려 백담사에 도착하지만 오늘 난 백담사는 찿지 않고 설악으로 들어선다.






처음 계획은 겨울 가야동계곡을 올라 봉정암으로 갈계획이었으나

백담사를 걸어 올라 시간과 체력을 소비하였으니 오세암을 걸쳐 정규등로로 봉정암을 향한다.

오세암을 갈때마다 만나는 아름들이 전나무는 경이롭다는 생각을 한다.

바람거세고 척박한 설악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세월을 버틴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나도록 만남이 반갑다.

사실 만경대는 오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발길을 돌린다.

만경대에 오른다면 봉정암이나 소청산장 도착 시간이 너무 늦을것 같다.

소청산장에서 일몽을 보고 싶으니 만경대는 패스다.


오세암에서 봉정암을 오르는 길은 십여년만에 만나는 것 같다.

평소에도 산객들이 많이 찿지 않는 곳이지만 오늘은 단 한명의 산객만 만난다.

긴 시간 동안 나와 같이 하는 것은 세찬 바람뿐이다.



가야동계곡에서 봉정암 오층석탑을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거친 숨소리를 요구한다.

지난 두달동안 여러 이유로 산행다운 산행을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을 한다.

거친 숨소리의 나를 반기는 것은 용아장성능이다.








오층석탑에는 서산 서북능선에 노루궁뎅이 만큼 겨울 햇살이 걸쳐 있고 파도소리같은 바람소리만이 남아 있다.

멀리 서북능선의 끝에는 안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그 앞을 귀때기청이 버티고 있다.

봉정암은 숙소 및 기타 공사가 비수기를 맞아 한창 진행중이라 어수선하고 소란스럽다.

적멸보궁에 들려 염불하는 스님 뒤에서 예불을하고 다시 소청산장으로 향한다.







노루궁뎅이 만큼 남아 있던 해가 떨어질까 죽을 힘을 다해 오르지만

서산으로 지는 해는 나보다 먼저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적멸보궁에 들리지 않았으면 소청산장에서 일몰을 볼수 있었을까?

부질없는 생각이다..


자리를 배정받고 취사장에서 이른 저녁을 먹는다.

새우구이와 삼겹살, 그리고 마가목주 한 모금

봉정암에서 소청산장까지 해 떨어지기전에 오르려 무리를 했더니 옷이 땀에 젖어 두꺼운 패딩을 입어도 춥다.

오늘 컨디션으로 보아 내일 공룡능선은 무리일것 같아 대청봉 일출로 일정을 바꾼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추위를 달래며 잠을 청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업치락 뒤치락... 5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대청봉 일출 준비를 하고 6시 대청봉으로 향한다.





배낭을 소청산장 취사장 벽에 기대어 놓고 대청으로 향한다.

역시 설악의 겨울 새벽 바람은 만만하지 않게 불어 온다.

특히 소청에서 중청으로 향하는 등로는 마치 동해 바다로 날려 버릴듯이 불어 온다.

중청산장에 들려 잠시 몸을 녹이며 일출시간을 맞춘다.














7:10분에 대청봉에 오르니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어 몸을 가누기 어렵다.

그래도 바람이 적은 화채방향으로 내려서서 일출을 기다린다.

언제나 일출은 경이로움이고 새로움이다.

오늘의 일출은 특히 일축 방향의 구름이 확실한 조연을 해서 더더욱 멋진 일출 그림이다.




대청봉에서 인증을 하고 싶지만 바람이 너무 거세서 버티고 서기조차 어렵고

체감온도가 영하 30도이니 누구에게 사진을 부탁하기도 어렵다.

힘들게 빈 정상석을 담고 돌아서니 볼이 추운것이 아니라 아플정도로 추위가 매섭다.







언제보아도 멋진 설악이다.

멀리 향노봉이 보이고 금강산이 뒤로 선명하다.

돌아서면 점봉산이 수많은 산군을 거느리고 아침을 맞고 잇다.





중청산장에서 잠시 몸을 녹이고 다시 소청산장으로 향한다.





소청은 그래도 대청보다 바람이 세지 않아 멈춰서서 서북능선과 멀리 금강산을 당겨 담는다.




소청산장은 이미 산객들이 모두 떠나고 배낭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소청산장에서 용대리 주차장까지 갈 생각을 하니 아득하지만 그래도 어제 생각했던 것 보다 컨디션이 좋으니 걸어보자.







소청산장에서 봉정암으로 내려서다보면 용아장성 최고의 조망처를 만난다.

배낭을 내려 놓고 암릉을 올라 용아장성릉을 담는다.

설악 매니아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고 싶고 다녀온 용아장성릉이다.

매년 1~2건의 사망사고가 나고 공단에서 엄격하게 통제하지만 도전의식 충만한 산객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쌍용폭포도 설악 한겨울 혹한을 견디기 어려웠는지 꽁꽁 얼어 붙었다.

조망데크에서 한참을 머물며 하염없이 쌍폭을 바라본다.

저 두꺼운 얼음속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나를 위로 하는듯 하다.




수렴동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걷고 또 걷는다.

매섭던 추위도 한결 따뜻해져 마치 이른 봄날같다는 생각이다.

어쩌다 마주치는 산객이 반갑지만 난 그저 아무 생각없이 걷는다.


백담사에 도착하니 이제는 제법 다리도 뻐근해서 셔틀버스가 한없이 그리워진다.

이렇게 올라올때나 내려갈때 모두 걸어 본적이 없는것 같다.

그래서일까?

오른쪽 발바닥에는 커다란 물집까지 훈장처럼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