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설악산-문패도 없는 설악에 들다!

Edgar. Yun 2020. 6. 8. 13:53

설악은 역시 설악이다.

문패도 없는 번지 없는 주막(?)을 찾았지만 선경을 보여준다.

벽장속에서 오래된 명품의 그림을 꺼내 펼쳐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림을 설명한다.

저 이름 없는 능선에 있는 바위를 보라! 이름이 없음이 더 이상하지 않는가?

 

설악산-문패도 없는 설악에 들다.

일시 : 2020년 6월 7일 일요일

코스 : 용수골~능선~필례계곡

 

코로나19는 핑계일지도 모른다.

아니 핑계에 불과했고 또 다른 이유로 설악을 찾기 어려워졌다.

모처럼 용기를 내어 설악을 찾는다.

꽤 오랫동안 비경을 찾아 설악을 올랐지만 오늘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블로그에 떠도는 그 흔한 산행기록조차 없는 설악을 찾는다. 어쩌면 큰 실망을 안고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계령에서 안부로 오르다 돌아서면 멀리 보이는 백두대간 오른편의 암릉군, 필례약수를 지나갈때도 힐끗힐끗 쳐다보았던 암릉을 찾아 오르기로 한다. 아주 높이 오르지 않아도 되고 코스도 길것 같지 않으니 여유를 갖고 서울을 떠난다.

필례약수 가는길, 귀둔리의 어디쯤이겠지?

차를 세우고 불쑥 나타난 가리능선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렌즈에 담는다.

그냥 가리봉이라고도 부르지만 그러기에는 산세의 크기가 너무 커서 가리능선이 더 어울리는 가리봉과 주걱봉이다.

가리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설악산 서북능선은 파노라마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멋진 풍광이었다.

그러면서 아! 저기가 대승령이고 저기가 안산이고... 저기가 귀때기청이고... 그때가 이미 십년이 훨씬 넘었다.

 

 

 

 

필례2교 근처에 차를 세우고 용수골로 접어든다. 지도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계곡의 이름은 보이지 않더니 어느 지도인가 용수골로 표기되어 있다. 설악에는 워낙 멋진 계곡들이 지천이어서 평가하기도 어려운 작은 계곡이다. 천불동계곡과 가야동계곡, 백담사계곡은 물론이고 관터골과 둔전골은 계곡의 크기도 크지만 풍광도 멋지니 그들에게 비견 할 수 없다.

계곡을 조금 올라서면 보이는 별길릿지길의 선바위를 닮은 바위가 오늘 목표다.

 

 

인적이 드문 탓일까?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표고버섯이 산객을 붙잡는다. 지리산에는 표고버섯이 많다고 하는데 설악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다. 십여년전만해도 흔하던 잔나비걸상버섯도, 말굽버섯도 요즘은 귀한 몸이 되었다.

산우들은 계곡 주변에 지천으로 있는 쑥부쟁와 산당귀에 관심이 많아 자꾸 뒤돌아 부르게 한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탓인지 땀이 비오듯 쏱아진다. 올봄은 예년보다 더위가 늦어 좋았는데 갑자기 30도가 넘는 초여름 날씨가 찾아왔다. 그탓일까? 아니면 아침으로 라면에 막걸리 서너잔을 곁들여서 더 힘든걸까? 생각보다 발걸음이 무겁다.

문뜩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니 가리봉이 가까이에 있다. 언제 다시 올라 서북능선을 바라볼 수 있을까?

 

 

계곡의 끝에 도착하니 사면의 등로는 암석이 부서져 내려 오르기 조심스럽다. 설악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낙석사고리는 것을 너무나 잘알고 있기에 더 조심스럽다. 그 마음을 아는지 바람 한 점 없던 설악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니 풍경보다 더 좋은 바람이다. 

 

아! 설악이구나! 이래서 설악이라고 하는것이지...

잡목을 헤치고 능선에 올라서서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다. 어디서 어디를 보아도 멋진 풍광이 바로 설악이다.

 

 

아! 여기였구나! 지나다면서 바라보던 암릉이 여기였구나! 건너편 서북능선의 귀때기청이 바로 코앞이다.

 

 

그리고 멀리 끝청과 중청, 대청봉이 보이고 제법 멋진 암릉들이 아직 신록을 잃지 않은 설악의 봄과 만나 멋지다.

설악에 문패가 무슨 소용이었던가? 문패가 없어도 이리 멋진 풍광이니 굳이 문패를 달아 내가 누구라도 알릴필요가 없다.

 

 

마치 얘기를 업고 있는 형상의 바위, 오늘은 여기까지만 오를 계획이다. 다음에 다시 찾게되면 모녀바위가 있는 능선을 지나 앞에 보이던 바위까지 다녀오리라!

 

 

 

요즈음 설악의 높은 곳을 찾지 않으니 그 흔한 수수꽃다리조차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바위틈에서 피어난 한송이의 수수꽃다리가 바람에 짙은 향기를 실어 보낸다.

처음 설악을 찾던 시절, 무박으로 한게령을 올라서서 끝청을 지날때면 아직 채 어둠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정신이 혼미해지는 짙은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오곤 했었다. 점점 설악의 수수꽃다리를 만날 기회가 줄어들겠지...

 

 

저기 보이는 정상이 1055봉일까?

 

 

반대편의 암릉으로 올라서서 모녀바위를 한번더 담아본다. 시원한 바람은 언제 그랬냐듯이 흘러 내렸던 땀을 한순간에거두어 간다. 바람만 시원한 것은 아니다. 맘속도 시원해진다.

 

 

 

 

 

대청봉에서부터 시작된 서북능선이 중청을 지나고 끝청을 지나 귀때기청을 지나친다. 오래전에는 귀때기청만 올라도 행복했었다. 물론 지금도 행복하지만 원통을 지나면서 펌핑하던 심장이 그때의 심장이 지금은 아님을 부인 할 수 없다.

여기서 가리봉을 바라보니 가리봉은 작은, 낮은 산이 아니다. 마치 고향 홍천의 금학산과 비슷한 산형태라고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모녀바위를 담고 점심을 먹는다. 

시원한 바람이 흘러내렸던 땀을 거두어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용수골 바로 위의 작은 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용수골과 다르게 마치 비단을 깔아놓은듯 내려서는 길이 좋다.

 

역시 돌아오는 길은 토요일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예전보다 여러가지 이유로 설악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어 언제 다시 또 설악을 찾을지 모르겠다. 맘이 맞는 설악산 산행의 파트너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