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한라산-아쉬운 설경에 탄식하다!

Edgar. Yun 2020. 12. 19. 12:55

한라산-아쉬운 설경에 탄식하다!

일시 : 2020년 12월 18일 금요일

코스 : 어리목~윗세오름~선작지왓~영실

 

 

코로나는 멈춰 서지 않았다. 우한에서 작년 이맘때 인간 세계로 왔으니 벌써 일 년을 우리 곁에서 머물렀다.

이쯤 되면 떠날 때도 되었건만 염치는 눈곱만큼도 없어 떠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정말 골치 아픈 놈이다. 가라고 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이렇게 속을 썩이니 코로나 블루가 올 수밖에 없다. 올해 오월 휴가를 내고 중국의 쓰구냥 산을 다녀올 계획이었는데 코로나 태클로 가지 못해 휴가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휴가를 대책도 없이 덜컥 내놓고 하루를 보내니 더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만용(?)으로 한라산 등산을 계획하고 "급" 항공권을 티켓팅 한다. 제주를 갈 때는 9.900원,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은 17,000원이다. 그래 이 난국에 한라산 산행은 분명 만용이다. 어쩌지? 이미 저질렀으니 조심조심 다녀올 수밖에 없다.

 

새벽에 일어나 급히 배낭을 챙긴다. 어젯밤에 미리 배낭을 꾸려 놓았어야 했는데 결국 이어폰과 아이젠을 챙기지 못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는 새벽에 내린 눈이 제법 쌓여 있고 간간히 눈발이 날려 조심조심 공항으로 향한다. 혹시 배낭을 멘 사람이 나 혼자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제법 등산객이 눈에 보이니 안심이라기보다는 눈치가 덜 보인다.

혹시나 일기예보가 틀려 맑은 하늘이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이 가득하다. 제주 공항에 내려서 한라산을 바라보니 1,000 고지부터 눈이 쌓여 있고 그 위로는 안개가 띠를 두르고 있다. 공항에서 우선 터미널 가는 버스를 찾아 올라탄다. 아내는 택시를 타고 다녀오라고 하지만 오늘 어리목을 떠나 영실로 내려오는 코스는 버스를 타도 시간이 남으니 비행기 티켓보다 비싸게 택시를 탈 수는 없다. 다행히 버스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어리목행 버스를 물어보니 이크 8시 30분 출발하고 1시간 간격으로 운행이 된다고 한다. 남은 시간은 15분! 서둘러 김밥 두 줄을 사서 배낭에 넣고 물과 딸기 우유를 사서 다시 배낭에 넣는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천 원에 두 개인 어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다. 배낭을 멘 산객들을 가득 채운 버스는 약 1시간이 걸려 어리목에 도착하고 10여 명의 산객을 내려놓고 떠난다. 버스 정류장에서 어리목 입구까지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눈꽃과 상고대를 바라본다.

 

 

어리목 휴게소에 도착하자 설화와 상고대가 피어난 멋진 풍광이 나를 환영한다. 사람들은 한라산 표시석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산행을 준비하지만 혼자인 나는 바로 윗세오름을 향해 출발을 한다.

 

 

출발을 하자마자 만난 어리목계곡으로 내려서는 작은 내리막길은 제법 미끄러워 아이젠을 놓고 온 나를 자책하게 한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오르막 길이니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3~4명씩 그룹으로 올라가지만 나처럼 홀산인 사람들도 가끔 있다. 하늘이 파랗다면 더 좋았을 텐데... 지난주 맹추위로 아침운동을 하루도 못한 탓인지 종아리가 뻐근하고 제법 힘이 들어 땀이 흐른다. 사제비동산을 올라서자 안개까지 밀려 내려오고 눈발도 날려 시계는 점점 아쉬움을 남긴다.

 

 

사제비 샘을 지날 무렵 마치 화이트 현상처럼 짙은 안개로 시야는 10여 미터 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지독한 안개는 만세동산을 지나고 만세 샘을 지날 때 절정에 달해 나를 끝없는 탄식의 절망으로 이끈다. 지난 오월에도 지독한 안개로 백록담을 제대로 조망하지 못하고 돌아섰는데 오늘도 그날처럼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그냥 돌아서겠다는 생각에 다리의 힘이 절로 빠진다.

 

 

파란 하늘이었다면... 무엇이 나무이고 무엇이 바위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설화와 상고대가 그 짙은 안갯속에 피어나 바람을 맞고 있다. 가파른 등도 오를 때 땀에 젖은 뒷머리가 뒤에서 부는 바람에 얼었는지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아무 생각 없이 윗세오름으로 오르는 걸음을 옮긴다. 벌써 어리목으로 내려오는 산객들이 있지만 혹시 윗세오름은 안개가 어떠냐고 차마 묻지도 못한다.

 

모노레일도 눈에 묻혀 운행을 중단하고 멈춰서 있다. 마치 눈터널 같은 풍경에 내려서던 산객들이 멈춰서 사진에 담는 모습이 부러운 것은 홀산 때문이다.

 

 

윗세오름 대피소 일부 건물이 오월에 찾았을 때 폐쇄했었는데 이제 철거를 해서 공사 중이고 윗세오름 대피소 마당에는 군데군데 눈밭에 앉아 점심을 먹는 산객들과 야속한 짙은 안개뿐이다. 화장실에 들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말리다 창밖을 보고 깜짝 놀란다. 조금 전 가득했던 안개가 사라지고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서둘러 문밖으로 나와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 이 아름다운 풍경을 담는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눈을 깜빡일 수가 없다. 찰나에 안개가 밀려왔다가 찰나에 안개가 걷히고 설화의 신세계를 보여준다.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대다가 셔터를 멈추고 다시 안개가 물러서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내가 오늘 코로나 19를 두려워하면서도 이곳 한라산을 오른 이유가 바로 이 풍경 때문이었다. 만세동산을 지나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할 때까지 체념을 했었는데 내 마음을 아는지 안개와 구름을 잠시나마 걷어내고 설경을 보여준다. 윗세오름 표시석에서 사진을 찍는 틈에 나는 남벽으로 향한다. 어리목에서 올라오는 등 로워 달리 몇 명 지나가지 않은 눈길이지만 망설일 틈이 없다.

 

오늘 내가 본 처음이자 마지막 백록담이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안개가 걷힌 백록담을 기다리지만 내 바람을 한라산은 더 이상 들어주지 않는다. 조금 더 남벽으로 다가서면 혹시 안개와 구름이 걷히지 않을까?

 

 

 

여자 산객 한 명이 두려움도 없이 나를 앞질러 걸어간다. 몇 명 지나가지 않아 종아리까지 눈에 올라오는데... 어젯밤에 인터넷으로 확인했을 때는 돈내코 구간은 개방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발자국은 남벽까지 이어지는 걸까?

 

 

 

 

 

 

 

 

 

 

이 구간의 설화는 설화의 끝판을 보여준다. 설화와 상고대가 긴 터널을 만들었다. 남벽으로 향하며 되뇐다.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열려달라고...

 

 

앞서가던 여자 산객이 돌아선다. 아마도 구름과 안개가 더 걷힐 거라는 기대를 접은 것이 아닐까? 나는 여자 산객이 올라섰던 데크를 따라 오른다. 혹시 다시 하늘이 열리지 않을까?

 

 

 

 

아주 찰나! 다시 하늘이 뚝뚝 떨어지는 잉크 빛 하늘을 열어준다. 탄성을 내지를 틈도 없이 다시 사라지는 파란 하늘! 고맙기도 하지만 야속하기도 하다.

 

 

 

 

잠시 이곳에 멈추어 서서 고민을 했다. 돈내코로 넘어갈까? 젊은 남녀가 돈내코에서 넘어온다고 한다. 아이젠도 스패츠도 착용하지 않고... 돈내코로 가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으나 안개와 구름이 걷히지 않는다면 돈내코로 가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 고민을 한다.

 

 

 

돈내코에서 온 남녀 산객이 지나가고 나서도 한참을 기다리며 망설이다가 끝내 돌아선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보여주고 싶어 하니 보여주는 것만 보고 돌아서는 거다. 다시 아쉬운 발걸음으로 돌아온 윗세오름 대피소는 다시 짙은 안갯속에 잠겨 있었다.

 

 

한라산의 풍광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작지왓도 역시 안갯속이다. 지난 오월에는 이곳을 지나 내려가다가 갑자기 하늘이 열려 돌아왔었는데 오늘도 돌아설 수 있을까? 선작지왓이 끝나는 털진달래밭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지만 하늘이 열릴 기미가 전혀 없으니 미련두지 말자!

 

 

 

 

병풍바위 정상의 설화와 상고대도 남벽 가는 길의 설화와 상고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늘이 열리지 않은 아쉬움 속에 돌아서는 나를 위로하는 듯하다. 

 

 

 

영실기암을 내려설 때 잠시 안개가 걷히더니 이내 다시 안개로 영실기암을 감추어 버린다. ㅎㅎ 그래도 이미 맘이 정해져서 난 아무렇지도 않아요!

 

눈 때문에 영실 주차장에서 통제하는지 탐방로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 모처럼 다시 갈아 내려가면 되지 뭐! 여기서 2.5km

영실에서 터미널 가는 버스 시간이 20분이었던가? 서둘러 내려왔더니 버스 시간이 20여분이 남았다. 아내는 택시 타고 내려오라고 하지만 버스를 타도 시간이 남는데 굳이... 시간이 남아 동문시장에 들러 방어회도 사고... 야채호떡도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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