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마중하다!
일시 : 2021년 2월 20일 토요일
코스 : 내소사~관음봉 삼거리~관음봉~세봉~세 봉 삼거리~입암
지난주 서해안을 따라 많은 춘설이 내렸지만 춘설의 유혹보다 봄꽃의 유혹의 더 나를 이끌어 변산의 내변산으로 향한다. 재작년 이맘때 복수초와 홍매화를 보았으니 올해도 내변산은 이미 봄이 찾아오지 않았을까? 주말이면 어김없이 박무가 조망을 방해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박무가 내변산을 향하는 내내 따라붙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변사로 향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 준비를 하는 내 옆에 산수유가 노란 꽃봉오리로 봄을 마중하고 있다. 며칠만 더 따뜻하면 금세 꽃봉오리를 터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 이렇게 봄은 벌써 와 있었구나!
서둘러 피었던 매화는 지난 혹독한 꽃샘추위에 꽃잎이 얼었나 보다. 에고 가엾어라. 며칠 뒤에 피어나면 사람들의 관심은 받지 못하지만 향기로운 꽃잎을 제대로 피울 수 있었을 텐데...
매표소에 적힌 요금을 보는 순간 욕이 나온다. 입장료가 4천 원이라니...비싸게 받아도 너무 비싸게 쳐받아 먹는다. 나도 절을 찾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종교가 돈에 눈이 멀면 안 되는데 해도 너무 하는 것 같다. 중이 고기맛을 알면 빈대도 남아나지 않는다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세 봉으로 올라 관음봉을 걸쳐 내려올걸 그랬다.
내소사 입구 전나무 숲길은 솔바람 소리에 전나무 사이로 내리는 비[松風檜雨], 4월의 신록[四月新綠], 겨울의 눈꽃[冬期白花]으로 표현되는 전나무 숲 3경[檜林三景]이지만 오늘은 이른 봄바람과 아내만이 나와 같이 걷는다.
고개 숙여 걸어가는 나를 보던 가로수 실례지만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나는요 갈 곳도 없고 심심해서 나왔죠.
하지만 찾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그렇지 내가 말해줬지 잊힐 줄만 알았다고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엔 날리어 다시 갔으면
내가 요즈음 최애로 자주 듣는 이문세의 "오늘 하루"에 나오는 가사다.
전나무길을 걸어가는 반백의 당신,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능가산 내소사(楞伽山來蘇寺), 일주문을 지나면 벚꽃 가득 피어 꽃바람 휘날리는 봄날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벚나무길이 내소사를 안내한다.
작은 연등을 치마처럼 둘러 입은 느티나무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 신록을 이루겠지? 봄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것을 느티나무는 알고 있을까?
대웅보전 문짝마다 각기 다른 화려한 꽃무늬로 조각되어 있는 빗살문은 목공의 땀과 열정이 서려있는 듯하다. 하나하나의 연꽃이 마치 금방이라도 극락으로 이끌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설선당 앞의 커다란 산수유나무도 노란 꽃망울을 준비하고 있다. 요사체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산수유나무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봄 마중을 나온 이유일 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기에 문지방이 저렇게 닳았을까? 고향집의 대문을 보는 것 같아 향수에 젖어들게 한다.
아내는 툇마루에 앉아 있는 나에게 "고향집 생각이 나는지 당신은 마루에 앉는걸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라고 한다. 따뜻한 봄햇살 가득한 날에 마루에 앉아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가끔씩 들려온던 닭들의 울음소리를 듣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소사를 나와 관음봉으로 향한다. 호흡이 정리될 때까지 언제나 시작은 힘이 든다. 부는 바람이 쌀쌀하다는 생각보다는 시원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미 봄이 곁에 와있다는 뜻일까? 등로 옆의 작은 바위의 이끼가 방금 나온 내소사의 빗살문에 새겨진 연꽃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조망이 터지는 첫 번째 전망대에서 내소사를 닮는다. 내소사에서 내소사를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내소사를 보는 것 같아 좋다.
관음봉 절벽길을 돌아서다가 미끄러져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가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카메라는 큰 문제거 없지만 렌즈가 찌그러져 줌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귀찮아서 가방에 넣지 않고 손에 들고 오르다 받은 선물이니 나를 자책하는 수밖에 없다. 망원렌즈를 커내 사진을 담으니
관음봉의 정상석은 한낮 햇살을 등지고 서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반대쪽에 한문으로 관음봉을 표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음봉에서 세봉 가는 중간에 의자를 펼쳐놓고 막걸리 한잔하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아주 멋진 전망대를 만났다. 커다란 소나무가 만드는 그늘도 좋고 내소사가 한눈에 조망되어 좋다. 여름이라면 곰소항에서 불어오는 비릿한 바다내음도 더 엾이 좋을 듯하다.
세 봉의 중턱에 자리 잡은 청련암은 샛길만 있을 뿐 이곳에서 내려가는 길은 없다.
세 봉에서 입암으로 내려서는 등로는 비단을 깔아 놓은 듯 푹신하다. 가끔 만나는 작은 암릉에서 다시 내소사를 만나는데 소나무 밑의 풍광이 비박을 부르는듯하다. 행여 다시 내변산을 찾는다면 다음에는 세 봉으로 올라 내소사로 내려설 것이다.
정든 민박집 안뜰과 작은 정원에 지천으로 복수초가 피었다. 이미 복수초 소식이 전해진지 한 달이 넘었으니 새삼스러울 리 없지만 노랗게 꽃 피운 복수초를 나는 올해 처음 보았으니 반가움은 당연하다.
재작년에는 모과가 노랗게 남아 있더니 올 겨울 추위에 얼은
모과는 몇 해 지난 감처럼 검게 그을려 있다. 주인은 어디를 갔는지
슬리퍼만 나란히 기대어 바람을 맞고 있다.
재작년에는 예쁘게 피었더니 올해는 아직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한 채 봄을 기다리고 있다. 머지않아 꽃망울을 터트리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마중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 봄은 아니련만 앉아서 기다리지 못하고 이렇게 마중하는 것은 내가 조급한 곳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