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구례 산수유-시인 홍준경을 만나다!

Edgar. Yun 2021. 3. 6. 21:19

시인 홍준경을 만나다.

일시 : 2021년 3월 6일 토요일

 

코로나가 400명대를 오르내리지만 봄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집 주변에도 매화가 향기를 바람에 날려 보내고 있고 산수유도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예년 같으면 광양의 매화축제로 떠들썩하고 구례 산수유 축제로 소란스러울 텐데...

올해는 예년보다 일찍 피었다고 하는 구례 산수유 마을을 아내와 함께 다녀오려고 한다. 나는 서너 번 다녀왔지만 아내는 아직 가보지 못한 대표적인 봄꽃축제 구례 산수유! 신동면으로 떠난다. 집에서 나름 일찍 떠난다고 6시에 출발했는데 고속도로에는 차량들이 만만하지 않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봄을 찾아 떠나는 걸까?

반곡마을 입구에 주차를 하고 진사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인 서시천으로 들어선다. 노고단과 만복대 사이로 흘러내리는 서시천에는 오늘도 역시 많은 진사들이 계곡에서 계곡과 산수유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렌즈에 담고 있다. 나는 그들처럼 무장도 하지 않았고 그들처럼 실력도 없으니 그들의 뒤에서 그냥 한컷 남겨본다.

 

 

 

구례 신동의 산수유는 곳곳에 많은 명소를 갖고 있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바로 이곳 반곡마을과 대음 마을이 아닐까? 산수유나무 세 그루면 자식 대학을 보낸다던 나무는 수많은 상춘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아직 이른 시간인 9시인데도 많은 상춘객들이 북적인다.

 

 

 

서시천을 올라서서 하위 마을과 상위마을 방향으로 향한다. 데크를 따라 오르다 보면 중간에 데크가 끝나 나도 하위마을과 상위마을을 다녀오지 않았다. 절정의 개화 상태로 나를 마중하고 있는 산수유 길은 마치 꿈길을 걷는 듯하다.

 

산수유 꽃잎 아래 잠들다

                                             홍준경

 

어머니

 

올해도

산수유꽃 절정입니다

 

노디 건너 그 남새밭

돌담 굽은 골목마다

 

당신 누워 계시는 묘비 앞 저리도 환합니다

 

언젠가 당신이 하신 말씀

짠하게 떠오릅니다

 

"눈에 익은 저 사람들 해 넘겨 또 볼 수 있을지"

 

어머니

 

눈빛에 어린

그리움이

꽃잎입니다

 

서시천을 사이에 두고 반곡마을과 대음 마을이 마주하고 있다. 아내는 징검다리 건너는 것을 무서워하지만 나는 징검다리를 건너면 고향이 생각이 난다. 마을 앞 개울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초등학교를 다녔으니 수도 없이 건넜던 징검다리다.

 

 

 

구례의 3화 3색 봄꽃의 시작은 신동의 산수유다. 구례군 신동면의 산수유를 시작으로 화엄사의 홍매화가 붉은 꽃잎을 피우고(오늘 허탕 제대로 쳤다) 섬진강의 하얀 벚꽃이 봄을 마무리한다.

 

 

 

데크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돌아서서 다시 대음 마을로 향한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대음 마을이다. 대음 마을에는 현재 16가구가 살고 있으며 남양 홍 씨 집성촌으로 약 300년 전 형성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큰 터’라고 부르다가 임진왜란 후에  대음 마을로 개칭했다고 전해지는데 나는 큰 터라는 지명이 더 정감이 가고 좋은듯하다.

 

 

 

대음 마을에서 서시천 건너 바라보이는 지리산은 차일봉이다.  만복대에서 발원한 서시천과 차일봉이 겨우내 찬바람을 막아준 덕분에 이렇게 산수유 천국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대음 마을은 곳곳의 돌담길이 상춘객들을 마을로 안내를 한다. 산동면의 여러 마을이 산수유꽃을 피우지만 대음 마을이 유독 사랑받는 것은 돌담과 어우러진 산수유 꽃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례 화가 지현 이강희의 한국화 초대전 포스터를 사진에 담았다. 아내는 그걸 뭐하려고 찍냐고 하지만 조금 전 보고 올라온 서시천의 또 다른 산수유가 이곳에 있다. 사진으로 담은 산수유 꽃과는 다른 산수유꽃이다.

 

 

 

시인 홍경준의 생가로 조심스럽게 들어선다. 집 앞에는 캠퍼스에 봄을 담으려는 화가가 앉아 있고 행랑채 흙벽에는 시인의 시가 걸려 있다. 마당은 가꾼 듯 가꾸지 않은 듯... 사람의 온기는 있는데 사람은 없다. 

 

 

들어설 때의 조심성은 어디 가고 이제는 마치 오랜만에 내려온 고향집처럼 집안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설중매 아무리 춰도 향기를 거래 않듯"

 

시인은 아무리 가난해도 자존 팔지 않는다. 돌 잘 김 저 풀꽃들 봐라! 각각 제 이름 간직한 채 낮게 엎구려 구시렁거리지 않고 꿋꿋이 한 세상 살지 않던가! 씨앗 여물면 바람에 날려 보내 윤회를 꾀하면서...

 

시집은 독자들의 몫 둥지 떠난 새끼들이다.

 

梅一生寒不賣香 상촌 신흠(象村 申欽)의 글을 패러디하여 마루 가운데 기둥에 붙여 놓고 시인은 시집을 무인 판매하고 있었다. 빈집인 줄 알았는데 중절모를 쓰고 나타난 시인 홍준경에 깜짝 놀란다. 시집 두 권을 집어 들고 시인에게 사인과 기념사진을 요청드리니 흔쾌히 수락하신다. 나에게 주는 내선 물은 홍준경 시인의 마지막 시집인 "지상의 마지막 선물" 솔비에게 줄 선물 시집은 "산수유 꽃담"이다.

 

 

조금 겁은 났지만 시인과의 기념사진은 마스크를 벗어 버렸다. 무진기행(霧津紀行)의 김승옥 작가를 마중하러 지금 살고 계시는 윗집에서 내려오셨다는 시인은 무진기행의 무진은 지금의 순천 갈대밭이라고 설명해 주신다. 시인의 나이도 많으시면서(1954년 생) 김승옥 작가를 나이가 많으시다고 표현하신다. 김승옥 작가가 1941년 생이시니 당연하지만 문뜩 세상 모든 기준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시간이 되면 윗집으로 올라와 차 한잔 하라고 하시지만 우리네식 인사라는 것을 잘 알기에 윗집을 찾아가지는 못한다. 본인은 시조시인인데 시조(時調)라는 말의 시는 때 시로 현재를 읊는 것이라며 마당 건너 작은 행랑채의 황토벽에 붙어 있는 코로나의 봄을 소개하신다. 아! 염병할 코로나에 세상 온통 지랄 통 속 그가 읋은 코로나 봄날의 시작이다. 처마 끝에 걸어둔 풍경을 건드리니 그 소리 또한 시다.

 

 

 

 

시인의 집을 나와 돌담 다시 다시 마을의 작은 길들을 따라 걷는다. 대음교에서 서시천을 내려다보니 아직도 진사들이 남아 산수유와 서시천을 담고 있다.

 

 

대음교에서 내려다보는 다리 아래의 서시천 반석도 멋진 풍경이다.

 

 

돌담과 흙담길 사이로 산수유 노란 봄이 달려온다. 바람만 불어도 짖어대던 동네 개들이 눈치채지 못했는지 조용하지만 대음 마을의 봄은 골목 가득하다. 그냥 우두커니 서서 난 그 봄을 마중하고 있다. 굳이 돌아다니며 봄을 찾아다닐 필요가 전혀 없을듯하다.

 

 

300년의 이야기가 돌담의 이끼 속에 가득 담겨 있겠지? 돌담과 산수유가 너무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이래서 홍경준 시인의 첫 시집이 "산수유 꽃담"이었나 보다

 

.

 

대음교 아래 서시천으로 내려서서 물속에 잠긴 산수유를 담아본다.

 

 

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하다 만난 원좌마을의 풍경은 따스한 봄날 그 자체다. 문뜩 생각한다. 산수유가 만약에 매화처럼 그 향이 짙었다면 이곳에서 살지 못했을 거라고... 그 향기에 취해 어지러워 어지러워 어찌 살 수 있겠는가?

 

 

산수유 꽃밭을 나와 화엄사로 행한다. 아내가 화엄사의 홍매화가 피었으니 보고 가자는 말에 화엄사로 향하는 길, 갑자기 엔진 경고들이 들어와서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블루핸즈에 전화를 하니 받지를 않고 에라! 홍매화부터 보고 나면 점심시간 지나겠지! 주차를 하고 서둘러 각화 전 옆의 홍매화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홍매화는 아직 세상 밖으로 소풍 나올 생각이 전혀 없이 빨간 꽃망울만 가득 달려 있다. 아! 이 실망을 넘어선 절망! 어쩔 건가! 

 

 

붉게 피어 있는 동백꽃이 나를 위로한다. 산성각 올라가는 길에 피어 있는 동백은 붉다 못해 검붉은 꽃잎이다.

 

 

장육 전이 있던 자리에 조선 숙종 때 각황전을 중전 하고 계파 선사가 심었다고 하여 장육화라고도 불리는 화엄사의 홍매화는 구례의 3색2봄화중하나이다. 수령이 250년이 넘은 우리나라의 3그루 중 한 그루로 앞으로 최소 열흘은 지나야 그 붉은 꽃잎과 매화향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내려오는 길에 절 입구에 있는 매화 몇 컷을 담으며 위안을 삼는다.

 

 

桐千年老恒藏曲 오동은 천 년을 늙어도 가락을 품고 있고
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 달은 수없이 이지러져도 그 본바탕은 남아 있고
柳莖百別又新枝 버들은 아무리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

상촌 신흠(象村 申欽, 1566~1628년)의 유명한 글이다.


서둘러 화엄사를 빠져나와 블루핸즈를 찾아가지만 영업시간은 12:00까지라는 푯말만 반겨줄 뿐 문은 굳게 닫혀 있다. 다른 일반 카센터에 에서 점검하니 단순 에러로 보인다며 프로그램 리셋으로 작업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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