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설악산

Edgar. Yun 2021. 6. 7. 15:00

노인봉을 눈앞에 두고 돌아서다!

일시 : 2021년 6월 7일 토요일

코스 : 소공원~천당폭포~무너미고개~신선대~노인봉

노인봉의 산솜다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나를 설악으로 유혹한다. 한때는 에델바이스로 불리며 수학여행의 기념품이 되고 담근 술도 되었던 산솜다리인데 남획의 영향인지 개체수가 그리 많지 않다. 노인봉의 한 모퉁이에 군락을 이루어 피고 있는 산솜다리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하지만 2주 전에 설악골을 다녀온 뒤로 설악이 무섭다. 지금의 내 체력으로 노인봉을 다녀올 수 있을까? 

오랜만에 설악으로 들어선다. C상가 주차장에 14대가 넘는 산악회의 대형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것일까? 소공원주차장도 이미 많은 탐방객들의 차량으로 가득하다. 그랬구나 나만 코로나 19를 무서워하나 보다. 신흥사 바로 밑에 주차를 하고 준비를 마치니 7시 30분이 넘어서고 있다. 신흥사에서 저항령 다리까지의 길을 예쁘게도 포장을 해 놓았다. 오늘도 에전에 그랬듯이 비선대를 지나 계곡으로 내려서서 막거리 한잔으로 허기를 채워본다.

 

 

양폭산장의 데크에 자리를 잡고 라면을 끓인다. 라면에 마가목주 한잔을 곁들이니 훌륭한 아침이 된다. 9시가 넘어 시장기가 느껴지는 이 아침에 어떤 음식인들 맛이 없을까? 만경대가 오늘따라 더 멋지게 보이고 천당릿지로 향하는 길목의 감투봉이 신비롭다.

 

 

양폭의 폭포수가 오늘따라 더 옥색으로 보인다. 배낭을 벗어 던지고 시원하게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오늘 목적지인 노인봉을 향한다. 양폭을 지나 음폭과 천당을 가는 산행이 내 인생에서 다시 있을까?

 

무너미고개로 들어서니 대청봉에서 내려오는 산객들이 제법 많다. 코로나 영향인지 젊은 산객들도 심심찮게 마주친다. 500m의 거리지만 무너미고개를 넘을 때마다 쉽게 넘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오른다. 신선대를 오르기 전 삼거리에서 그늘에 주저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옛 공룡길을 가고 싶지만 오늘은 탐방로를 따라 오른다.

 

 

바람에 실려오는 수수꽃다리의 은은한 향기가 오늘따라 더 반갑다. 한때는 한계령을 올라 공룡을 타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적이 있었다. 여명이 밝아오는 끝청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짙은 수수꽃다리의 향기가 반겨주곤 했다. 

 

 

 

공룡에 올라서니 바람이 몸을 가누지 못하게 흔들어댄다.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핀다는데 공룡의 암화들도 바람에 흔들리며 피는가? 공룡이 언제부터 이렇게 품이 넓어 많은 산객을 품었는지... 공룡이 동네 뒷산이 되었다. 끊임없이 산객들이 밀려든다. 마등령에서 오는 산객들이 이렇게 많으니 이곳에서 마등령으로 간 산객들은 얼마나 많을까?

 

노인봉으로 가는 등로 주변에 앵초가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다. 가는골 옥녀폭포에도 앵초는 피었겠지? 왜 이렇게 다시 가고 싶은 설악이 많은 걸까? 

 

 

공룡능선에는 마가목이 하얀꽃을 한창 피우고 있다. 얼마나 붉은 열매를 바람에 흔들며 산객을 맞으려고 소금처럼 하얀 꽃을 피우는 걸까?  오후 1시가 훌쩍 넘어가니 허기도 지고... 체력도 바닥이 난다. 노인봉 박지에서 먹으려던 점심을 이곳에 차려놓고 만다. 삼겹살에 참당귀 잎과 쑥부쟁이 잎에 싸서 잎에 넣는다. 마가목주 한잔 곁들이니 쌈장이 없는 쌈도 꿀을 발라 놓았다.

 

 

밥을 먹고 눈을 돌리니 바람에 각시붓꽃이 정신 없이 흔들리고 있다. 이제 각시붓꽃이 피는 것을 보면 설악은 설악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애초에 이곳에 점심상을 차리는 것이 아니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노인봉의 산솜다리도 다 귀찮다. 세찬 바람에 흔들려서 사진에 담을 수도 없다고 회군의 당위성을 부여하고 다시 신선대로 돌아선다. 산솜다리는 버지 못하고 돌아서지만 마가목 꽃을 보았으니 그만이다.

 

 

 

다시 신선대로 돌아와서 공룡을 담아본다. 비선대를 지나며 노인봉의 산솜다리를 포기하고 돌아서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허벅지가 뻐근하고 발바닥이 뜨겁다. 아마도 노인봉을 다녀왔으면 칠흑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뒤에 이 길을 걸었을 것 같다.  나의 설악시대는 저물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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