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주왕산

Edgar. Yun 2021. 11. 10. 15:50

일시 : 2021년 11월 7일 토요일

코스 : 주산지~대전사~대왕암~급수대~용추협곡~용추폭포~절구폭포~용연폭포

올가을은 마중 나갈 틈도 주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 사는 것이 뭐가 그리 바쁜지... 가을이면 더 바쁜듯하다. 이미 가을은 노루꼬리만큼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 이제라도 가을을 마중하지 못하면 추수 끝난 텅빈 들녁처럼 내 가슴에도 공허함만 남으텐데... 어떡해 이겨낼까? 지금이라도 가을을 마중해야겠다. 설악의 가을은 이미 끝났지만 남녁으로 내려가면 아직 남아 있지 않을까? 

1976년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주왕산이 올 가을의 끝을 잡으러 떠나는 곳이다. 서너번 다녀왔지만 아직 주산지를 보지 못했고 아내는 처음이니 좋을것 같다. 아내의 컨디션이 등산을 위주로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니 어쩌면 최적의 여행이지 않을까? 한눈에 사로잡는 암봉과 깊고 수려한 계곡이 빚어내는 절경을 간직하고 있으니 말이다.

 

운이 좋다면 안개가 만들어낸 주산지의 선경을 볼 수 있을거란 기대를 갖고 새벽 4시에 집을 나선다. 도로가 막힘이 없으니 3시간이 예상되던 소용시간이 2시간 30분으로 줄어 6시반에 주차장에 도착한다. 이미 정규주차장은 만원, 임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산지로 향한다. 사과의 고장답게 주산지로 향하는 길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사과가게들은 부산하다. 

 

어둠을 걷어낸 ㅈ산지에 도착하니 주산지는 인산인해다. 주차장에 있던 서너대의 대형버스는 아마도 무박으로 내려와 어둠이 걷히기를 기다렸다가 올라왔으리라! 언뜻보아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저수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사진속의 주산지를 보았을까?

주산지의 아름다움은 역시 물속에 잠긴 왕버들의 아름다운 자태가 아닐까? 30여구루였던 왕버들이 최근에 7그루가 고사를 하고 14그루도 고사직전이라고 한다. 와버들에게 휴식을 주지 않고 이렇게 일년 365일 물속에 가두어 놓는다면 나머 있는 왕버들나무도 모두 사라져 그냥 평범한 저수지가 될지도 모른다. 물속에서 강한 생명력을 보이는 왕버들이라도 일년에 서너달은 물밖으로 나와 햇빛을 받아야 오래 살 수있는데 인간의 욕심이 주산지의 왕버들을 단명시키고 있다.

 

1721년 조선 숙종 때 계곡에 제방을 쌓아 물을 가둬 농번기 때 쓸 수 있는 농업용 저수지 용도로 만들어진 주산지는 주산천 주위로 왕버들이 서식하다 제방 축조 이후 물속에 잠겼다고 한다. 300년을 사는 왕버들이 인간들에게 발각되어 50년도 못살고 사라진다고 하니 미안하다. 이름난 등로처럼 휴식년제라도 만들어서 강제휴식을 취해야하지 않을까?

 

주산지 왕버들

                                               반칠환

 

누군들 젖지 않은 생이 있으려마는

150년 동안 무릎 밑이 말라본 적이 없습니다

피안은 발 몇 걸음 밖에서 손짓하는데

나는 평생을 건너도 내 슬픔을

다 건널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신은 왜 낙타로 하여금

평생 마른 사막을 걷도록 하시고,

저로 하여금 물의 감옥에 들게 하신 걸까요

젊은 날, 분노는 나의 우듬지를 썩게 하고

절망은 발가락이 문드러지게 했지만,

이제 겨우 사막과 물이 둘이 아님을 압니다

이곳에도 봄이 오면 나는 꽃을 피우고

물새들이 내 어깨에 날아와 앉습니다

이제 피안을 지척에 두고도 오르지 않는 것은

나의 슬픔이 나의 꽃인 걸 어렴풋이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시집 『 전쟁광 보호구역』(지혜, 2012)

 

이제 피안을 지척에 두고도 오르지 않는 것은

나의 슬픔이 나의 꽃인 걸 어렴풋이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시인은 주산지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았다. 발가락이 문드러지는 절망속에서 체념으로 삶의 위로를 받는듯하다. 피안이란 해탈한 후의 내세를 말한다. 굳이 해탈하려고 하지 않아도 이미 해탈을 했기에 굳이 피안으로 가지 않으리라! 

 

가을이 주산지에 담겼다. 나처럼 왜이렇게 빨리 지나가냐고 푸념도 하지 않고 어제와 다른 오늘을 그냥 묵묵히 담아내고 있다. 천년의 나이라는 것이 이런것인지... 나는 언제쯤 바람처럼 지나가는 세월을 보지 못할까?

 

동자승이 타고 있던 목선은 저수지 뚝에 올라앉아 언제 다시 돌아갈지 모르고 세월의 바람에 낡아가고 있고 동자승과 노승이 머무르던 저수지 위의 암자는 흔적도 없이 이미 사라진지 오래지만 여전히 주산지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내가 동자승이 되고 사람이 암자가 되어...

 

주산지를 서둘러 빠져나와 주왕산으로 향한다. 어둠속에 갇혀있던 만추의 풍경이 길옆으로 스쳐 지나간다. 난 11월의 들녁이 좋다. 비어있는 들녁이 좋다. 다시 봄이 올것을 알기에 이들은 아무 미련없이 비워내는데 우리는 무엇이 두려워 손에 닿는 모든것을 움켜쥐고 사는지... 손에 쥐가 난다.

 

서둘러 왔지만 주왕산 입구로 들어서기도 전에 도로는 챵으로 가득해서 거북이처럼 움직인다. 개울건너편의 마을길을 따라 올라 민박촌식당에 차를 세운다. 식사를 하면 5천원의 주차료를 받지 않으니 우리에게는 일석이조다. 아내는 비빔밥을, 나는 순두부찌개를 주문했다. 경상도 음식이라 투박하지만 풋고추무침이 내입맛에 맞는다. 사과김치가 있어 입에 넣지만 별다른 맛은 아니다.

 

대전사로 향하는 길목에는 음식을 파는 식당과 가게들이 줄지어 서있다. 직접만든 두부도 눈에 들어오고 인삼튀김도 먹고 싶다. 어떤이는 쓰레기같은 음식을 팔아 역겹다고 하고 호객행위가 지겹다고 하지만 매일 만나는 일상이 아니니 난 괜찮다. 대전사의 담벼락에는 아직 가을 단풍이 남아 산객을 맞는다.

 

 

 

 

주왕산의 상징같은 기암을 담는다. 설악산의 신흥사, 지리산의 화엄사, 속리산의 법주사는 입에 붙는데 주왕산의 대전사는 왜이리 낯설을까? 햇살이 구름에 가려 남아있는 가을 풍경이 우울해보인다.

 

 

주왕의 전설이 있는 대왕암가는 길이다. 대왕암을 지나 협곡 사이 암벽을 지나면 자연동굴이 나온다. 당나라 때 스스로 주왕이라 칭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한 주도라는 사람이 주왕산으로 숨어 들어온 뒤, 이 곳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신라왕은 주왕을 토벌하기 위해 마장군을 보냈고, 주왕은 굴 입구에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다 발각되어 마장군의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대왕암에서 용추협곡까지 이어지는 길은 다시 또 걷고 싶은 멋진 등로이다.

 

 

다리를 건너 대왕암으로 가는 작은 오르막의 등로에는 아직 채 가을을 떨구지 못한 단풍이 남아있다. 아쉬움이 남았는지 낙엽이 되지 못하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박제된 단풍이 잇어 눈길을 끈다.

 

대왕암에서 작은 오르막길을 오르면 연화봉과 병풍바위, 그리고 급수대를 조망 할 수 있는 전망대가 기다린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급수대는 올라가서 서보고 싶다는 충동을 부른다.

 

전망대에서 나와 급수대를 돌아가는 길이다. 아직 단풍이 남아 바람에 떠 돌아다닌다. 오늘 걸는 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간이다. 산에다 길을 낸다고 모두 자연훼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 이길을 걸으며 설악산이 생각나는지...

 

대왕암을 다녀온적이 없으니 이길도 처음이다. 다시 또 와도 나는 이길을 찾아 걸을것이다. 이길의 끝은 시루봉이 올려다 보이는 용추협곡입구다.

 

                왜 이름이 시루봉일까? 시루봉은 마을앞 장승의 얼굴을 닮았는데 말벌에게 방한칸을 내주고 있다.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의 단풍은 아직 가을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용추계곡이다. 이름만큼 웅장하지 않다. 물론 용추폭포라고 무조건 커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실망스런 모습이다.

 

대만의 이름난 협곡, 타이루거협곡이 떠오르는 용추협곡이다. 타이루거협곡이 더 웅장하지만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용추협곡이 더 예쁘지 않을까? 

 

용연폭포 가는길에서 400미터만 걸어 들어오면 만날수 있는 절구폭포를 오늘 처음 만난다. 설악산의 복숭아탕과 염주폭포와 닮았다는 생각이다.

 

힘들어하는 아내보고 내려오지 말라고 하는데도 굳이 따라 내려온다. 조금지나서 힘들다고 짜증을 낼거면서... 우씨

주방천 유로상에 있는 용연폭포는 쌍용추폭포, 내용추폭포관련항목 보기로도 불린다. 

 

용연폭포는 2단폭포인데 2개의 폭포를 동시에 볼수 없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단폭포에 높은 던망대를 만들면 어떨까?

 

대전사 담벽의 단풍을 다시 만났다. 산에 다녀오는 동안 치장을 하였는지 훨씬 밝은 안색으로 산객을 다시 맞는다.

 

 

 

이제 나의 2021년 가을여행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다시 가겟길을 지나가며 가을을 마감한다. 올라갈때 군침을 흘렸던 인삼튀김 한봉지 사들고 집으로 향한다. 

'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덕유산  (0) 2021.11.29
사패산  (0) 2021.11.18
천관산  (0) 2021.10.16
설악산  (0) 2021.10.04
설악산  (0) 2021.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