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바람꽃
바람꽃을 만나러 떠나다.
세파에 흔들리는 것은
비록 나만이 아니었다.
잔설남은 내변산 산기슭에
바람꽃도...
노루귀꽃도... 그리고,
농로의 개불알꽃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바람 속에서도 꽃을 피울 뿐...
.
내변산-변산바람꽃을 만나러 떠나다.
일시 : 2018년 3월 3일 토요일
내변산 분소~바람꽃 자생지~어수대~쇠뿔바위봉~청림마을~바람꽃 자생지
변산바람꽃을 만나러 내변산으로 떠난다.
지난달 무등산을 가려던 계획이 포항의 여진으로 통제되어 얼떨결에 내변산을 다녀왔지만
오늘은 변산바람꽃이 보고 싶어 내변산으로 떠난다.
변산바람꽃이 변산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변산에서 만나고 싶다.
우물쭈물하다 보니 금요일 오후가 되었고 내변산을 공지했던 2곳의 안내산악회는 이미 마감이다.
집에서 변산까지는 약 190km, 설악가는 길과 비슷한 거리니까 애마를 타고 가지 못할 거리는 아니다.
요즘 갱년기인가? 좋은 컨디션일 때가 거의 없지만 채 겨울바람이 끝나기 전에
얼어있는 갈잎을 헤치고 봄을 피우는 가녀린 변산바람꽃을 보면 내게 커다란 위로가 될 것 같다.
금요일 오후가 되어서 내변산 산행 영리 산악회를 찾지만남은 자리가 없다.
할 수 없이 애마를 타고 내변산으로 향한다.
6:40분에 집을 나섰는데 도로는 벌써 차들로 가득하다.
조금 일찍 떠나서 버스전용차로를 주행했었으면...
그래도 9:30분이 되어 내변산 분소에 도착한다.
주차장에는 아직 몇 대의 차만 주차되어 있다.
이런 오늘 계획했던 가마소와 세 봉을 구간은 산방으로 통제다.
따라서 가마소로 향하는 등로 초입에 있는 바람꽃 자생지도 당연히(?) 통제구간이다.
할 수 없이 사무실에 들려 신상을 적고(도대체 왜 적어야 하는 거야) 바람꽃 자생지 출입을 허락받는다.
지난번 대책 없는 통제를 했던 국공이 오늘은 바람꽃 다리 빗장을 마치 인심 쓰듯 열어주고는 사무실로 돌아간다.
바람꽃 다리를 건너 좌측이 변산바람꽃 자생지다.
바람꽃 자생지에는 약 10여 개의 노란 깃대를 바람꽃 주변에 꽂아 놓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변산바람꽃을 찾아 눈을 마주치지만 애처로움으로 변산바람꽃은 인사를 대신한다.
어젯밤 추위에 작고 창백한 꽃잎과 잎에 서리를 맞고 잔뜩 웅크리고 있다.
아~ 어쩌냐! 이 애처로움을...
한참 무릎 꿇고 변산바람꽃을 바라보다 이내 일어서서 바람꽃 다리를 건넌다. 내가 보고 싶었던 변산바람꽃은 아직 추위가 시지 않은 겨울 끝자락에 활짝 핀 모습이었는데...직소폭포로 향하지 않고 한참을 다리에서 서성이다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차라리 쇠뿔바위봉을 올랐다가 창림 마을에서 변산바람꽃을 만나고 싶다.
차를 몰고 유동마을로 향한다.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우고 어수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날머리인 창림마을 주차장에서 이곳까지는 대략 2.5km이니 걸어서 돌아올 수 있는 거리다. 어수대에 도착하자 차량 1대가 멈춰 서더니 4명의 산객이 내려 산행 준비를 하는데 그중 한 명의 손에는 호미가 들려 있다. 무엇을 채취하려는 거지? 그들을 산행 내내 다시 보지 못했다.
어수대 뒤편은 제법 큰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이 코스는 2011년 탐방로가 열리고 바로 그해 겨울, 눈이 꽃잎처럼 내리던 날 왔었으니 약 7년만의 방문이다.
황진이와 쌍벽을 이루었다는 매창의 전설이 남아있는 어사대에 그의 글이 남아 있어 담아본다.
어수대 우측의 탐방로를 약 20여분 올라 능선에 올라선다. 잠시 땀을 식히고 다시 좌측 능선을 타고 쇠뿔바위봉으로 향한다. 바람이 봄바람이다. 지난주 설악에서는 상고대가 가득했는데 일주일새 계절은 다른 계절이 되어 있다.
봄날 치고는 조망이 아주 좋은 날이라 마루금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멀리 변산의 넓은 평야와 평야 건너 서해바다가 답답했던 마음을 위로한다.
처음 만나는 조망처인 암릉에서 셀카로나를 담으며 휴식을 취한다. 하늘이 마치 가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 좋은 그늘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는다. 바람좋은 그늘이라니... 하하하~ 헛웃음이 나온다. 봄이야? 등로에서 주황색 나비를 만나고 나니 진짜 봄이라는 생각이 든다.
쇠뿔바위봉에서 만나는 내변산은 7년 전보다 더 아름답다. 7년 전에는 내리는 눈 때문에 멀리 볼 수 없었지만 오늘은 가을 같은 청명함에 내변산이 곁에 있다.
건너편에는 전망대가 있지만 오늘은 아무도 없다. 만차라던 산악회의 산객들은 모두 관음봉으로 갔으니 이곳 쇠뿔바위는 온전히 내 것이다.
누구라도 있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며 외로움이 밀려든다. 혼자라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밀려드는 외로움과 쓸쓸함은 뭐라 해야 할까?
멀리 바닷가는 옅은 봄 안개가 작은 산들을 포근히 감싸고 있어 더 따뜻한 봄처럼 느껴진다. 그래 봄은 이렇게 오는거지!
나를 잠시나마 갈등하게 했던 중계소도 담아본다. 저곳 중계소는 나에게도 아직 미답지에서 발걸음을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마음을 접고 이곳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이곳 쇠뿔바위봉에는 내변산이 온전히 조망된다. 그리 높지 않은 내변산이지만 산군은 제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는것이 시간이니 이곳에서 셀카놀이를 한다. 셀카 치고는 제법이다. ㅎㅎ
ㅅ
한참을 세뿔바위보에서 머무르다 청림마을로 내려선다. 7년 전에는 없던 나무계단이 암벽을 따라 제대로 설치되어 있다. 암벽에서 다시 주황색 나비를 만나 담아본다. 이후에도 주황색 나비(이름을 모르니...)를 삼십여 마리나 만난다.
쇠뿔바위봉을 내려서서 소나무 그늘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으며 쇠뿔바위봉 전망대를 바라본다.
청림마을 삼거리에서 잠시 망설이다(중계소를 갈까?) 청림마을로 내려선다. 변산바람꽃을 만날 수 있을까? 내려서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등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생각하지도 못한 노루귀꽃을 만난다. 계획한 쇼핑보다 충동구매가 더 행복하다고 하는데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노루귀꽃을 만나니 더없이 행복하다.
지난겨울이 얼마나 추웠으면 저렇게 꽃이 작을까? 노루귀꽃이 사랑스러움으로 다가오지 않고 안쓰러움으로 다가온다.
흰노루귀가 군락을 이루고 피어난 곳에는 부지런한 꿀벌이 한참 일을 하고 있다. 넘 열심히 일하면 지쳐서 끝까지 가지 못하는데...ㅋㅋㅋ
홍노루귀 네 자매가 맵시 좋게 피었다.
혹시나 변산바람꽃을 만날 수 있을까? 이곳저곳을 찾아다니지만 결국 변산바람꽃은 만나지 못한다. 이곳에 바람꽃은 없는걸까?
변산바람꽃을 만난 것은 둥굴레를 다듬고 계시던 할머니 댁이었다. 사람들이 꽃을 찍는다고 다른 꽃(복수초, 수선화...)을 밟아 허락하지 않지만 나에게는 특별히 소개하고 알려주신단다. 너무 변산바람꽃이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으니 오히려 당황스럽다.
골목길을 조금 더 걸어 나오다 또 다른 집의 화단에서 변산바람꽃을 만났다. 이곳의 변산바람꽃에도 꿀벌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논두렁 마른 풀잎 속에는민들레도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2.5km의 국도를 따라 다시 어수대로 향한다. 포도를 걸으면 피곤하지만 봄바람 가득한 오늘은 걷는 것이 행복하다. 도로 옆 작은 개울에서는 산란을 한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짝을 찾는 비둘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니 봄은 가까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곁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다시 차를 몰고 내변산 분소로 향한다. 아침에 만나 애처로웠던 변산바람꽃을 다시 만나고 싶다. 봄햇살에 다시 피어 있을까?
변산바람꽃은 따사로운 봄햇살에 기운을 차리고 화사한 모습으로 피어 있다. 덧없는 사랑, 기다림의 꽃말을 갖고 있는 변산바람꽃이라 역시 기다려야 제 모습을 볼 수 있나 보다.
활짝 핀 변산바람꽃을 만났으니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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