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청량산-축융봉에서 청량산을 조망하다

Edgar. Yun 2018. 3. 18. 21:36

축융봉에서 청량산을 조망하다.

홀로 떨어진 축융봉(845m)에 오르면 11개 봉우리가 병풍처럼 연결된 청량산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왼편 끝자락 낙동강에서 치솟은 장인봉에서부터 가장 오른쪽 탁립봉, 그리고

또 바위 절벽에 자리잡은 청량사까지...


청량산-축융봉에서 청량산을 조망하다.

코스 : 청량산매표소~축융봉~청량산성~입석~청량사~선학정

일시 : 2018년 3월 18일 일요일


올봄에는 아직 남도의 산을 한번도 찿지 못했다.

나이가 한살 더들어 멀리 가는것에 대한 꾀가 생기기도 했고(무박으로 가는것이 너무 싫다) 마땅히 가고 싶은 산행지도 없었다.

이번주도 토요일은 꼭 참석해야하는 거래처 결혼식이 있어 일요일인 오늘 멀리가는 산행이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남도로 봄마중을 가야하지 않을까?

통여의 미륵도에 우뚝 솟은 100대 명산 중 하나인 미륵산을 만나러 가고 싶지만

일요일에 다녀오는 산악회가 없으니 다녀 올수가 없다.

일요일 산행지를 뒤지고 또 뒤져도 맘에 드는 산행지가 없다.

그래 이기회에 축융봉에서 청량산의 주봉을 조망하고 오자!

10여년전에 청량산의 장인봉을 다녀왔으나 축융봉에서 청량산을 조망한적이 없으니 한번 다녀오는 것도 좋겠다.

일요일에 진행하는 안내산악회의 특성상 약 13km의 코스 산행시간을 충분히 줄 것 같지 않아 걱정스럽긴 하다,

걱정이 현실이 된다.

버스안에서 리딩하는 사람이 안내되어 있는 코스가 잘못되어 코스를 변경해야 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해빙기 낙석 위험으로 통제되는 구간이 있고 축융봉을 다녀온뒤

탁립봉, 경일봉을 걸쳐 자소봉, 장인봉을 돌아 오는 코스는 당일코스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나는 종주를 계획하지 않았기에 별 문제 없지만

축융봉을 다녀와서 입석에서 청량사, 그리고 장인봉을 다녀오려는 나에게 산행시간을 5시간 20분을 주워지니

다녀오라는건지 가지 말라는 건지...계획했던 코스를 산행하기는 어려울듯하다.

어찌되었든 나는 축융봉을 다녀오기 위해 매표소 입구에서 내린다.

축융봉으로 향하는 나와 또 다른 산객을 매표소입구에 내려 놓고 버스는 선학정으로 떠나 버린다.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서둘러 축융봉으로 향한다.

처음부터 코스가 만만하지 않다.

전망대에서 낙동강과 날머리인 주차장을 담고 다시 가파른 나무계단의 코스를 힘겹게 오른다.

호흡이 가빠지고 종아리가 터질듯하다.

겨우 가파른 코스를 오르니 소나무 군락이 산객을 맞는다.

그래 청량사에서 뒷실고개로 올라 하늘다리를 건너려던 계획을 내려 놓자.




욕심을 털어내고 천천히 오르니 알싸한 향이 가득한 연녹색 생강꽃이 나를 반갑게 마중하지 않나!

생강나무는 축융봉 바로밑까지 군락을 이루며 피고 있었다.

아마도 10여일뒤에는 연녹색의 생강꽃이  가득할것 같다.




이름도 모르는 이친구도 이제 봄을 준비하고 있다.

홀씨를 바람에게 부탁하려면 가벼워야 할 것을 알고 한껏 가벼운 깃털을 만들고 있으니 염치없는 인간보다 낫지 않은가?




조금더 오르면 멋진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지만 소나무를 바라보는 내맘은 그리 편하지 않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였던 1943~45년,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소나무에 톱질을 했던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아니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지 모르지만 흉터는 지워지지 않고 남는 것이 세상 이치다.



전위봉에서 축융봉 서봉을 담는다.

전위봉 오르는 등로 중앙에 어떤 썩을놈이 볼일을 보고 지나갔다.

짐승도 이짓을 하지는 않는데... 개자식이다.




축융봉 암벽에는 부처손이 농장처럼 가득하다.

손을 타지 않고 이렇게 온전히 보존되고 있는 것이 신기롭다.

 "나는 자연인이다"가 방영되며 너두나도 약초꾼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덕분에 별것 아닌 약초도 호들갑을 떨며 신묘한 효험의 약초로 소개되었고 산하의 약초가 수난을 당한다.




드디어... 축융봉이다.

홀로 떨어진 축융봉(845m)에 오르면 11개 봉우리가 병풍처럼 연결된 청량산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왼편 끝자락 낙동강에서 치솟은 장인봉에서부터 가장 오른쪽 탁립봉, 그리고

또 바위 절벽에 자리잡은 청량사까지...

사실 청량산의 봉우리가 아니라 독립된 산으로 보아도 문제되지 않을것 같다.




축융봉에서 청량산을 담고 서둘러 점심을 먹는다.

치킨 한조각에 맥주 한캔이 오늘 점심 메뉴다.


지난 3월 13일부터 국립공원내 음주 금지다.

9월까지 계도기간을 걸쳐 가을부터는 단속을 하겠단다. 

나라가 언제부터 국민을 이렇게 많이 사랑했지?

산에서 지나친 음주를 두둔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아주 후진국적인 발상아닐까?

산에서 음주를 해서 사고가 발생하니 음주를 금지하고 단속을 하겠다?

참으로 아주 쉬운 발상이다.

힘들어도 지속적인 계몽으로 지나친 음주문화를 개선해야지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음주가 사고를 부른다면 구조비용을 사고 당사자에게 책임지게 하면 된다.

또한 그런 논리라면 도심에서도 술을 판매해서는 안된다.

도심에서는 술먹어 일어나는 사고가 없을까?


점심을 먹고 축융봉의 축복, 청량산을 담는다.

가을 청량산은 그 어느산의 가을보다 더 멋지다는 생각이든다....올 가을에 다시 청량산을 찿을수 있을까?

아마도 쉽지 않을것 같다.




축융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정말 봉화스럽고 봉화답다.

예전같으면 화전밭이라고 부를 고랭지의 밭들이 이국적인 풍광을 선물한다.





박무에 희미하지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멀리 소백산이 조망된다.




산객에게 인증샷을 부탁하고...




인증샷의 아쉬움을 셀카로 달래보고...




렌즈를 바꿔 소백산을 당겨 담는다.




마치 티벳의 사원같은 응진전(應眞殿)을 담는다.

응진전(應眞殿)은 나한전(羅漢殿)의 다른 이름으로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법당이다.

아라한은 공양을 받을 자격을 갖추고 진리로 사람들을 충분히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므로,

나한전을 응진전(應眞殿)이라고도 한다.

응진전 뒷편으로는 금탑봉이 병풍처럼 우뚝솟아 있다.



청량사도 당겨 담고... 사실 나는 청량사보다는




청량사위로 연적봉과 탁필봉, 그리고 자소봉이 유혹하지만 오늘은 욕심을 이미 내려 놓았다.

다음에 다시 올라 청량산을 천천히 종주하리라!




장인봉, 선학봉, 그리고 자란봉과 하늘다리도 나를 유혹하지만 ㅎㅎ.. 오늘 난 흔들리지 않고 청량사까지만 갈거다.

처음에는 축융봉을 내려서면 청량사에서 하늘다리를 다녀올 계획이었지만 욕심을 내려 놓는다.




아쉬운 마음은 대신 렌즈로 당겨서 담는다.

대둔산 구름다리와 더불어 원조격인 하늘다리이다.




청량산성을 따라 밀월대로 내려선다.

공민왕사당도 관심있지만 오늘은 밀월대에서 바라보는 청량산이 더 관심있다.



청량산성에서 돌아서서 축융봉을 다시 담는다.

밀월대로 내려서는 청량산성 근처에는 두릅나무가 정말 많다.

왜 욕심이 나지? ㅋㅋ




전망대에서 당겨본 하늘다리이다.




전망대에서 셀카질로 시간을 보내고...




렌즈로 당기니 산객 몇명이 여유롭게 하늘다리를 건너고 있다.





밀월대에서 다시 청량산을 담는다.

왜 밀월대일까?

우측의 응진전과 유리보전이 왜 오늘 찿지 않을거냐고 시위를 한다.




난 오늘 옹진전은 가지 않는다.

응진전보다 더 만나고 싶은 것이 있으니 산꾼의 집 오산당이다.

운이 좋다면 오산당의 주인 시인 김선기님을 만날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밀월대를 돌아 내려서니 등로에 생강꽃이 가득하다.

포도를 잠깐 걸으면 작은 입석이 산객을 맞는다.




입석에서 밀월대를 담고 등로로 들어선다.

해빙기 낙석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조심스럽게 오른다.

입석에서 응진전이나 오산당을 걸쳐 청량사를 간다면 당연히 이길을 선택해야 한다.

선학정에서 가파를 콘크리트길을  힘들게 오르고 싶지는 않다.




입석등산로 입구에도 생강꽃이 피었는데 양지라서 그런지 축융봉 오르는 길에 만났던 생강꽃보다 더 활짝핀것 같다.




오산당으로 돌아서는 산길 모퉁이에 일제가 준 흉터에 누군가 대장군을 조각하여 위로한다.

과연 위로가 될지는 모르지만...




산길을 돌아서니 연화봉이 산객을 마중한다.

저 연꽃밑에 청량사가 자리잡고 있다.




10년전에도 들려 차한잔 마셨던 오산당에 도착했다.

응진전 만나는 것을 포기하고 이곳으로 왔으니 어찌 반갑지 않은가?

거리낌 없이, 마치 자주드나드는 단골집처럼 들어선다.

잠시후 김성기 시인이 나와 작은 나무의자에 앉아 역시 작은 어코디언을 메고 나와 얘기를 시작한다.

정치얘기에... 행복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금새 한시간이 지나갔다.

9가지 약재를 넣었다는 약차를 두잔이나 마셨다.

김성기 시인은 나보고 수필을 써보란다.

한번 써볼까?^^

밤이 새도록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난 일어서야 했다.




김성기 시인이 따라 나서신다.

나오면서 "십년뒤에 다시 와서 뵙겠다"고 하니 "그때는 땅속에 있겠지!" 웃으며 대답을 하신다.

이"렇게 우체통에 저승에서 오는 전갈을 반송 요청하셨으니 그럴리가 없다"고 하니

"요즈음은 통신이 워낙 발달해서"라며 웃으신다.

아! 이제 김성기 시인도 죽음을 생각하시나보다.

그래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움을 찿아 먼길 찿아 왔더니 떠나온 곳이 또 그리움이더라"

-시인 김성기-



나를 배웅하고 돌아서는 김선기 시인의 뒷모습이...ㅎ

좀더 머물며 시인과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난 하산시간이 정해져 있는 남자. 서둘러 내려서야 한다.




김성기 시인과 헤어져 서둘러 청량사로 향한다.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육육봉이 연꽃잎처럼 절을 둘러싸고 그 연꽃 수술 자리에 청량사가 자리 잡고 있다.

당시 봉우리마다 크고 작은 암자가 27개나 있어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청량산을 메울 만큼 불국토를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은 청량사와 외청량사라 불리는 응진전만 남았지만 겸재 정선의 동양화 한 폭을 보듯 비경을 자랑한다.


퇴계 이황는 청량산이 세상에 알려져 발길이 잦아지면 자신이 누리는 즐거움이 사라질까 염려했다고 한다.








아직 초파일은 멀었는데 청량사 가득 연등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청량사에서 운영하는 찿집 안심당이다.

난 이미 "오산당" 김성기 시인에게 차를 얻어 마셨으니...

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