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마지막 일정-성도를 관광하다.

Edgar. Yun 2020. 1. 2. 17:49


화새호텔을 떠나며

세계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는 여강고성내에 지어져 있는 나시족풍의 가옥형 호텔 화새호텔을 떠난다.

이틀이나 묵었지만 저녁에 들어왔다가 이른 아침에 나가게 되어 제대로 밖을 볼수가 없었는데

떠나는 오늘 처음으로 화새호텔과 여강고성의 일부를 만난다.



마지막 일정 - 성도를 관광하다.

일시 2019년 12월 30일 월요일



이제 차마고도와 중호도협, 그리고 옥룡설선 트레킹을 끝내고 마지막날 성도를 관광한다.

떠나기전에 허리도 아프고 무릅이 아파 걱정했고 혹시나 고산증이 있어 옥룡설산을 오르지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성도관광을 하게되어 기쁘다.


8시45분에 호텔로비에서 도착하니 모처럼 아침도 여유가 있다.

화새호텔은 여강고성내에 지어진 가옥형태의 호텔로 30도이 넘는 큰 호텔이다.

오성급호텔이라고 하지만 우선 난방이 되지 않으니 새벽에 일어나 컴퓨터를 하니 마우스를 잡은 손이 시럽다.

오늘따라 올겨울 최저 기온으로 영하권으로 떨어져 더 춥게 느껴진다.




실내라고 해도 바람만 없을뿐 밖의 온도와 별 차이가 없으니 적응이 안되어 있는 우리니라 사람은 더 춥게 느껴진다.

그래도 욕조가 있어 저녁마다 욕조에 몸을 담궈 피로를 씻어낼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드라이기는 글쎄... 그걸 드라이기라고 해야 할까?

한시간을 말려도 머리가 마르지 않는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로비로 향하다.

이곳이 정문인지 알았는데 알고 보니 후문이었다.




호텔의 로비와 식당이 있는 곳이다.




호텔정원에는 앵초가 피어 있다.

한라산의 선작지왓이나 설악산의 옥녀폭포 부근에 지천으로 있던 앵초가 생각이 난다.

아무리 오늘 날씨가 추워도 남도는 남도인가 보다.

2천3백미터의 고도에 있는 도시의 호텔정원에 앵초가 피어있으니 말이다.








호텔 정문으로 나와 이어진 고성을 구경한다.

부지런한 상점들이 벌써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신라 경주가 화재로 소실되지 않았다면 이곳 리강의 고성보다 더 멋졌을텐데...








여강고성에는 차량이 전면 출입금지되어 있어 버스가 있는 도로를 걸어 나와야 한다.

걸어나오며 만난 여강고성! 온전히 구경하지 못해 아쉽다.




도로가의 목련이 꽃을 피우고 있다.

여강의 겨울은 우리나라의 4월에 해당하는 날씨때문일게다.












여강에서 국내선을 이용해 성도국제공항으로 이동한다.

올때는 한밤중이라 보이지 않던 운남성과 쓰찬성의 산하가 내려다 보인다.

멀리 메리설산과 옥룡설산도 보이고...보이는 강은 장자강의 상류, 금사강줄기일까?




성동에 도착하여 한식당에에서 점심을 먹는다.

한식당이라고는 하지만 흉내만 낸 한식당이라고 해야 옳을듯 하다.

식사후 첫일정은 유비의 사당과 제갈공명의 사당이 있는 무후사 관광이다.




원래는 제갈공명의 사당이 따로 있었으나 군주인 유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찿아 제갈공명의 사당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제갈량의 작위와 시호는 모두 "()""()"자를 지니고 있어 

사람들은 존경을 표하기 위해 그를 "무후"라고 줄여불렀으며 이에 그를 기념하는 사당도 무후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무후사는 사천과 운남, 구리고귀주등에 수십개 있는데 그중 이곳 유비의 무덤이 있는 청두무후사가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명자가 지금의 자와 다른것은 청나라에는 현판의 명자를 같이 사용했다고 한다.




제갈공명의 출사표

諸葛孔明

제갈공명(181~234)

 

 

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殂.

선제창업미반 이중도붕조.

 

선제(先帝)께서, ()의 왕실(王室)을 일으켜 세우고자 왕업을 시작하여,

그 반도 이루지 못하신 채 붕어()하셨습니다.

 

今天下三分 益州疲弊 此誠危急存亡之秋也.

금천하삼분 익주피폐 차성위급존망지추야.

 

지금 천하는 위() () () 셋으로 나뉘어 있고,

촉한(蜀漢)의 영토인 익주(益州)는 오랜 싸움에 지쳐 쇠약해 있습니다.

참으로 한() 왕실의 존망(存亡)이 달린 위급한 때입니다.

 

然侍衛之臣 不懈於內 忠志之士 忘身於外者 蓋追先帝之殊遇 欲報之於陛下也.

연시위지신 부해어내 충지지사 망신어외자 개추선제지수우 욕보지어폐하야.

 

그러나 다행하게도, 페하(陛下)를 모시고 있는 신하들이 궁중에서 소임을 게을리하지 않고,

충성스런 장수들이 조정 밖 먼 전장에서 자신의 몸을 잊고 분전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전날에 입었던 선제의 특별하신 은총을 생각하여

그 은덕을 폐하께 갚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誠宜開張聖德 以光先帝遺德 恢弘志士之氣

성의개장성덕 이광선제유덕 회홍지사지기

 

폐하께서는 마땅히, 밝으신 귀를 여시어 신하들의 간언(諫言)을 듣고,

선제께서 남기신 덕을 크게 빛내야 하며,

지사(志士)들로 하여금 기개(氣慨)를 크게 떨칠 수 있도록 하셔야 합니다.

 

不宜妄自菲薄 引喩失義 以塞忠諫之路也

부의망자비박 인유실의 이색충간지로야

 

공연히 폐하 스스로 덕이 없다 하며 자신을 가벼이 여기시고,

신하들이 간()하면 사리에 맞지 않은 비유를 들어 변명함으로써 바른 도리를 잃으시며,

충성스런 마음에서 올리는 간언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으시면 안 됩니다.

 

宮中府中 俱爲一體, 陟罰藏否 不宜異同.

궁중부중 구위일체, 척벌장부 부의이동.

 

폐하께서 계신 금중(禁中), 대신들과 재상이 있는 조정(朝庭)은 한몸과 같습니다.

어디에서 일하는 자이건, 선한 자는 벼슬을 올려주고 악한 자는 벌을 주어,

조금도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若有作奸犯科 及爲忠善者 宜付有司 論其形賞 以昭陛下平明之理.

약유작간범과 급위충선자 의부유사 론기형상 이소폐하평명지리.

 

만일, 간악한 일을 저질러 죄를 범한 자가 있거나 충성스럽고 착한 자가 있거든,

마땅히 그들을 사직(社稷)에 넘겨 죄와 공을 논하여,

그로써 폐하의 공정하고 정명(正明)한 정치를 밝게 드러내셔야 합니다.

 

不宜偏私 使內外異法也.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정에 치우쳐,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에 사용하는 법이 달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侍中侍郞 郭攸之費禕董允等 此皆良實 志慮忠純

시중시랑 곽유지비의동윤등 차개량실 지려충순

 

시중(侍中)인 곽유지(郭攸之)와 비의(費禕),

그리고 시랑(侍郞)인 동윤(董允) 등은

선량하고 신실(信實)하며,

그 뜻과 생각이 누구보다도 충성스럽고 한결같습니다.

 

是以先帝簡拔 以遺陛下.

시이선제간발 이유폐하.

 

그런 까닭에,

선제께서는 많은 신하들 가운데 그들을 뽑아 폐하께 남겨 주신 것입니다.

 

愚以爲 宮中之事 事無大小 悉以咨之然後施行 必能裨補闕漏 有所廣益.

우이위 궁중지사 사무대소 실이자지연후시행 필능비보궐루 유소광익.

 

어리석은 신의 생각으로는,

궁중의 일은 크고 작은 일을 불문하고 모두 이들과 상의한 다음 시행하신다면

부족하고 모자라는 점을 충분히 채우실 수 있어,

널리 유익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

 

將軍向寵 性行淑均 曉暢軍事 試用於昔日 先帝稱之曰能.

장군향총 성행숙균 효창군사 시용어석일 선제칭지왈능.

 

장군(將軍) 상총(向寵) , 그 성품이 선량하고 행위가 바르며,

특히 군사의 관한 일에는 밝습니다.

일찌기 선제께서는 그를 시험하여 기용해 보시고,

군사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是以衆議 擧寵爲督

시이중의 거총위독

 

그런 까닭에, 여럿이 상의하여 상총을 궁중의 위병(衛兵)을 통솔하는

도독(都督)의 자리에 앉혔던 것입니다.

 

愚以爲 營中之事 事無大小 悉以咨之 必能使行陳和睦 優劣得所.

우이위 영중지사 사무대소 실이자지 필능사행진화목 우열득소.

 

어리석은 신의 생각으로는,

진중(陳中)의 일은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모두 상총을 불러 상의하신다면,

그는 틀림없이 진중을 화목하게 하고,

재능이 뛰어난 자와 열등한 자를 잘 가려 그들에게 알맞는 임무를 맡길 것입니다.

 

親賢臣 遠小人 此先漢所以興隆也.

친현신 원소인 차선한소이흥륭야.

 

어진 신하들을 가까이하고 소인들을 멀리했던 것이,

전한(前漢)의 고조(高祖) 문제(文帝) 경제(景帝) 무제(武帝) 때에

나라가 흥륭(興隆)해졌던 까닭입니다.

 

親小人 遠賢臣 此後漢所以傾頹也

친소인 원현신 차후한소이경퇴야

 

소인들을 가까이하고 어진 신하들을 멀리한 것이,

후한(後漢)의 효환제(孝桓帝) 효령제(孝靈帝) 때에 나라가 기울어졌던 까닭입니다.

 

先帝在時 每與臣論此事 未嘗不歎息痛恨於桓靈也.

선제재시 매여신론차사 미상부탄식통한어환령야.

 

선제께서는 보위(寶位)에 계실 때 늘 신과 더불어 이러한 일들을 논하시면서,

환제와 영제 때에 일을 두고 가슴 아파하지 않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侍中尙書長史參軍 此悉貞亮死節之信也.

시중상서장사참군 차실정량사절지신야.

 

시중 상서(侍中尙書)인 진진(陳震),

장사(長史) 벼슬에 있는 장예(張裔),

참군(參軍)인 장완(蔣琓) 등은 모두 지조가 굳고 성실한 신하들들입니다.

 

陛下親之信之 則漢室之隆 可計日而特也.

폐하친지신지 칙한실지륭 가계일이특야.

 

폐하게서 이들을 가까이하여 믿고 쓰신다면,

한실(漢室)의 부흥을 날을 세면서 기다릴 수 있으실 것입니다.

 

臣本布衣 躬耕南陽

신본포의 궁경남양

 

() 공명(孔明)은 본래 백의(白衣)의 평민으로서,

남양(南陽)의 벽지에서 밭을 갈던 자입니다.

 

苟全性命於亂世 不求聞達於諸侯

구전성명어난세 부구문달어제후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구차스럽게 목숨을 보전하려 했을 뿐,

제후(諸侯)에게 나아가 세상의 명성과 영화를 구할 생각은 전연 없었습니다.

 

先帝不以臣卑鄙 猥自枉屈 三顧臣於草廬之中 諮臣以當世之事

선제부이신비비 외자왕굴 삼고신어초려지중 자신이당세지사

 

그런데 선제(先帝)께서는, 신의 미천한 신분을 개의(介意)치 않으시고,

송구스럽게도 귀하신 몸을 굽혀 신의 오두막집에 세 번씩이나 찾아오셔,

당면한 세상의 일들을 신에게 하문(下問)하셨습니다.

 

由是感激 許先帝以驅馳.

유시감격 허선제이구치.

 

이에 신은 감격하여, 선제를 위하여 신명을 바칠 것을 맹세하였던 것입니다.

 

後値傾覆 受任於敗軍之際 奉命於危難之閒

후치경복 수임어패군지제 봉명어위난지한

 

그 후 건안(建安) 13, 당양(當陽)의 장판(長阪)에서 조조(曺操)에게 패하여

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선제께서는 신에게 나라를 구하라 명하셨습니다.

 

爾來二十有一年矣.

이래이십유일년의.

지금까지 나라의 위난(危難) 속에서 선제의 명을 받들어 오기 21년이 되었습니다.

 

先帝知臣謹愼 故臨崩寄臣以大事也.

선제지신근신 고림붕기신이대사야.

 

선제께서는 신이 조심스럽고 신중한 사람임을 아시고,

붕어(崩御)하실 때에 신에게

적군 토벌과 한실(漢室) 부흥의 큰일을 부탁하셨습니다.

 

 

受命以來 夙夜憂慮 恐付託不效 以傷先帝之明

수명이래 숙야우려 공부탁부효 이상선제지명

 

신은 선제의 유명(遺命)을 받은 이래로,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선제께서 부탁하신 일을 이루지 못하여

선제의 밝으신 덕을 손상시키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습니다.

 

故五月渡瀘 深入不毛.

고오월도로 심입부모

 

그래서 신은, 건흥(建興) 3년 여름에, 노수(瀘水)를 건너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오랑캐 땅 깊숙이 들어가, 남쪽 오랑캐를 토벌하였던 것입니다.

 

今南方已定 兵甲已足

금남방이정 병갑이족

 

이제 남쪽은 이미 평정되었고, 병기와 갑옷도 충분합니다.

 

當裝率三軍 北定中原

당장솔삼군 북정중원

 

마땅히 대군을 거느리고 나아가, 북쪽의 위()를 쳐 중원(中原)을 평정해야 합니다.

 

庶竭駑鈍 壤除姦凶 以復興漢室 還于舊都.

서갈노둔 양제간흉 이부흥한실 환우구도.

 

바라는 것은, 노둔(駑鈍)한 재주이나 신이 있는 힘을 다하여,

간흉(奸凶) 조조(曺操) 의 아들 조비(曺丕)를 물리쳐, 한실(漢室)을 부흥하고

왕도(王道)를 옛 도읍 장안(長安)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此臣所以報先帝 而忠陛下之職分也.

차신소이보선제 이충폐하지직분야.

 

이것이, 신 공명(孔明)이 선제의 두터운 은혜에 보답하고,

폐하께 충성을 다하는 신하로서의 직분을 다하는 길입니다.

 

至於斟酌損益 進盡忠言 則攸之禕允之任也

지어짐작손익 진진충칙유지의윤지임야

 

그리고 국가의 이익과 손해를 헤아려, 폐하께 충언을 다하는 것은,

조정의 일을 맡은 곽유지(郭攸之) 비의(費禕) 동윤(董允)등의 책임입니다.

 

願陛下託臣以討賊興復之效

원폐하탁신이토적흥부지효

 

원하옵건대, 폐하께서는 신에게 적을 토벌(討伐)하고

한실 부흥(漢室復興)의 공업(功業)을 세우는 일을 맡겨 주십시오.

 

不效則治臣之罪 以告先帝之靈

부효칙치신지죄 이고선제지령

 

신이 공훈을 세우지 못하면, 신의 죄를 다스려 선제의 영() 앞에 고()하십시오.

 

若無興德之言 責攸之禕允等之咎 以彰其慢

약무흥덕지언 책유지의윤등지구 이창기만

 

, 조정의 신하들이 폐하의 덕을 세울 만한 바른 말을 올리지 않거든

곽유지 비의 동윤 등의 허물을 꾸짖어 그들의 태만을 드러내십시오.

 

陛下亦宜自謀 以諮諏善道 察納雅言 深追先帝遺詔

폐하역의자모 이자추선도 찰납아언 심추선제유조

 

그리고, 폐하께서도 몸소 일을 도모하시어 신하들에게 좋은 방법에 대해 하문하시고,

신하들의 바른 말을 받아들이시어 부디 선제께서 남기신 말씀을 따르십시오.

 

臣不勝受恩感激 今當遠離 臨表涕泣 不知所云.

신부승수은감격 금당원리 임표체읍 부지소운.

 

신 공명은 선제의 크신 은혜를 입은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이제 멀리 정벌(征伐)의 길에 오르며 이 표()를 올리려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고 무어라 말씀을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유명한 출사표라 인터넷에서 찿아 한 번 읽어본다.

총명하지 못했던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로 제갈공명이 북벌 출정하며 올린 출사표이다.








제갈공명의 사당 "무후사"

아내는 지독한 추녀였지만 제갈공명보다 훨씬 뛰어나 사람이었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만큼 우리도 관우를 좋아해서 종로에 관우를 모신 동묘가 있다.

의형제를 맺은 삼형제중에서 가장 먼저 목숨을 잃었다.












청나라의 옛거리를 재현한 금리거리

가이드는 우리나라 인사동과 유사하다고 하지만 내가 보는 금리거리는 인사동과는 전혀 다른거리이다.




























2시간의 자유여행으로 금리거리를 관광했다.

중국의 항공편은 대체적으로 지연되는데 몇년만에 오히려 40분을 빨리 도착하여 시간이 남아돌았다고 한다.

딱 40분보면 적당할것 같은 금리거리이다.




금리거리 관광을 마치고 약선식으로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52도의 약주(?)를 몇잔 마신다.

독주를 좋아하지 않는 난 아마 이런 독주를 마시는 것이 30년도 더 된 듯...



















약선식으로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 일정으로 변검을 구경한다.

변검을 몇번 보았지만 더 업그레이드된 변검쇼가 아닌가 싶다.

ㅎㅎ 본토 공연이라서 그런가?


무대옆에 자막으로 한글이 나가는데 오타가 너무 많아 아쉽다.

공연을 관람하고 이제 공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