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선작지왓의 털진달래에 반하다.
일시 : 2020년 5월 16일 토요일
코스 : 영실매표소~선작지왓~윗세오름
몇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한라산 철죽을 보러 6월초에 한라산을 오른적이 있었다.
1,700m의 윗세오름을 붉게 물든 철죽의 물결은 표현하기 힘든 장관이었지만
어느해부터인지 철죽의 개체수가 감소하더니 볼품이 없어져서 한동안 찾지 않았다.
사랑하는 철죽이 산죽에 밀려 자꾸 초라해지니 너무 속상해서 보기 싫었는데 올해는 철죽이 아닌 털진달래를 만난다.
설악의 귀때기청 털진달래를 보고 싶어 몇년을 계획했지만 올해도 가지 못했다.
사실 당일로 다녀오면 되는데 비박을 하고 이른 아침의 털진달래를 보려고 하니 쉽지 않아 가지 못하고 있다.
한라산 선작지왓의 털진달래도 우연하게 제주도 출장이 잡혀 갑자기 계획했는데 싯점이 잘 맞았다.
목요일 발표된 일기예보에는 금요일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오전에 비가 내리고 오후에 비가 개어 함덕해수욕장과 물영아리오름을 다녀 올 수 있었는데 금요일 저녁에 다시 일기 예보를 보니 밤사이 비가 내리고 새벽에 개인다고...
어제는 일기예보가 틀려서 좋았지만 오늘은 자~알, 꼭 맞았으면 좋겠다. 가끔 틀려야 구라청이지 매일 틀리면 사기청이다.
새벽에 잠이깨어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다행히 비가 그쳤다.
서둘러 배낭을 챙겨 출장오면 즐겨 찾는 미풍해장국집에 들려 아침을 먹고 영실로 향한다. 생각보다 안개가 심하고 빗방울도 간간히 내려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파란 하늘아래 곱게 피어 있는 털진달래를 보고 싶은데 너무 큰 욕심일까?
영실 매표소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영실 기암을 바라본다.
그래도 가까운 곳은 안개가 스며들지 않고 비 그친 청명한 숲을 보여주지 이 또 한 행복 아닐까? 오를때는 가까이에 있는 것을 보라고 한라산에 안개가 가득, 내려 올때는 안개 걷힌 한라산을 볼 수 있으리라! 그치?
오늘 내가 보고 싶은 꽃은 털진달래인데 계곡 건너 병풍바위 오르는 등로에는 털진달래는 이미지고 철죽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선분홍 철죽이 반갑지 않은 것은 예쁘지 않아서가 아니다. 철죽이 만개했다면 털진달래는 이미 지고 없는 것이다.
雪上加霜? 이슬비까지 내리니 오늘은 활짝 개인 선작지왓을 기대 할 수 없나 보다. ㅋ~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이런건가? 비만 내리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활짝 개인 선작지왓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구상나무, 붉은 구상나무가 수꽃과 암꽃을 피우고 있다. 한때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였던 구상나무는 지리산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곳 한라산의 1,500m 내외의 높이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당단풍나무가 꽃보다 더 예쁜 새순을 피우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예쁜 새순을 피울수 있을가? 빗물을 한모금 혀에 담은 모습이 영락 없는 꽃이다.
"너는 태어 날때부터 예쁘구나" "그래서 가을에도 예뻤구나"
구상나무숲 사이사이에 빗물담은 털진달래가 피어 있지만 안갯속에 핀 털진달래는 내모습만큼이나 안쓰럽다. 따사로운 햇살아래 피었다면 선분홍꽃잎이 더 아름다웠을텐데 말이다.
"작은 돌이 무더기로 서있는 밭" 선작지왓은 안갯속에서 침묵하고 있고 노루샘 가는 등로에 피어 있는 앵초만이 눈길을 잡아 끈다. 분명 저 안개속에는 털진달래가 장관을 이루고 있을텐데... 한라산의 앵초는 설앵초로 불리는데 "행복의 열쇠"라는 꽃만큼이나 예쁜 꽃말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게체수가 많았는데 많이 줄어 안타깝다.
노루샘을 지나도 안개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날씨가 좋았다면 이곳에서 돌아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터벅터벅 윗세오름대피소로 향한다. 윗세오름대피소는 매점이 사자라지고 휴식 공간이 넓여져 있어 충분한 거리두기를 두고 앉아 쉴 수 있다. 혹시 안개가 걷히지 않을까? 한시간 넘게 대피소에서 피난? 기다려 본다.
한시간을 넘게 기다려도 안개는 미동도 하지 않으니 이제 포기하고 다시 내려서자. 표정에 실망감이 가득 담겨 있다.
노루샘을 지나는데...
잠깐 바람이 불며 안개가 사라지고 선작지왓이 인사를 한다. 안개가 걷히는 걸까?
병풍바위를 내려서는데 갑자기 영실기암이 보이기 시작하고 오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뭐지? 안개가 걷히는 걸까?
1,700m에서 다시 회군이다. 서둘러 올라 뒤따라오던 아내를 데리고 다시 구상나무숲을 지난다.
구상나무숲을 지나 선작지왓의 전망대에 도착하니 조금전 지나왔던 세상이 아니다. 안갯속에 숨어 있던 털진달래가 선분홍 꽃잎을 세상에 드러낸다. 벌써 안개는 백록담에 조금 남겨두고 서둘러 한라산을 떠나고 있었다.
안개를 걷어낸 선경, 왜 내가 아내에게 선작지왓을 가장 좋아하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전망대에 배낭을 내려 놓고 털진달래 사이를 뛰어 다니며 렌즈에 담는다. 위화도회군보다 더 멋진 1,700m의 회군이라고 기록하고 싶다.
백록담에 조금 남아있던 안개도 사라지고 파란하늘이 선작지왓을 덮는다. 못보고 내려설거라 생각했는데 행운이다.
비그친뒤 산행이 쪽박이거나 대박이라고 했는데... 두말없이 대박, 대박중의 대박이다.
예상했던 산행시간보다 두시간을 더 넘겨 다음 일정에 차질이 있지만 아무 문제 없다. 오늘의 메인 일정은 지금보고 있는 풍경, 선작지왓의 털진달래를 온전히 보는 것이었다.
다시 구상나무숲을 지나는 마음은 하늘을 날아가듯 가볍고 즐겁다. 최근에는 나도 세번이나 실패(?)했던 선작지왓의 선경을 오늘 아내와 같이 만났으니 신바람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오늘 세번째 만나는 구상나무숲의 털진달래꽃이지만 지금이 가장 예쁘다. 역시 꽃은 햇빛의 도움을 받아야 더 예쁘다.
털진달래는 진달래와 철죽과 다르다. 마치 오랜시간 공들여진 분재같은 모습을 갖고 있다. 오밀조밀한 선분홍의 꽃잎도
너무 예쁘다.
안갯속을 지나올때 보지 못했던 영실기암의 신록도 너무 멋지다. 언제나 마음속에 있는 영실 기암의 뒷길... 언젠가는 만나는 그날이 오겠지? 그날이 언제일까?
털진달래의 화사한 모습과 선작지왓을 보기 위해 간절히 아주 간절히 꿈을 꾸었더니 그 소원이 이루어진것 같다.
한라산 해발 1500~1700m까지 면적 63만2485㎡ 일대에 식생하고 있는 털진달래, 6월초에 피는 철죽에 가려져 있었지만 오늘부터 나는 털진달래의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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