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설악산 신선봉

Edgar. Yun 2020. 10. 16. 06:14

신선봉에서 공룡을 탐하다.

일시 : 2020년 10월 15일 목요일

코스 : 소공원~비선대~양폭산장~무너미고개~신선대

 

얼마만에 설악에 들어가는가?

한때는 제집처럼 드나들던 설악을 이제는 일년에 명절에 형제들 만나듯한다.

오늘이 명절이다.

모처럼 평일 휴가를 내고 그렇게도 내가 좋아하는 설악을 간다. 주말은 많은 산객들이 몰려들것이 자명하니 평일을 택해서 설악을 만나러 간다.

새벽에 일어나 배낭을 챙기고 출발하지만 오랜만의 산행인지 현관문을 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보니 손에 뽑아논 커피가 없다. 다시 들어와 커피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보니 이번에는 차열쇠가 없다. 에고 설악을 찾아는 갈 수 있는지... 

주차를 하고 예전처럼 내기 싫은 입장료를 내고 소공원으로 들어선다. 설악의 관문 비선교를 건너며 바라본 세존봉도 오늘은 더 없이 멋져 보인다. 언제 다시 세존봉에 오를수 있으려나!

 

평일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아지 이른 시간이어서 산객이 없는걸까?

비선교에서 비선대까지의 등로가 재포장되었다. 깔끔해보이지만 아스콘의 등로가 그리 반갑지는 않다.

 

비선대를 지나 언제나 쉬어가며 똥술 한잔하고 가던 그 자리에 다시 앉아 오늘도 똥술 한잔으로 허기를 달랜다. 여기만 와도 이렇게 좋은데 어떡해 참고 살았는지...

 

 

잦은바윗골을 지나자 단풍이 반겨주기 시작한다. 부지런한 단풍은 이곳까지 내려와 있었다. 같이 살면 부부만 닮는것은 아닌지 신갈나무 단풍과 생강나무 단풍이 너무도 닮았다. 

 

 

 

오련폭포를 지나며 조금전에 지나온 칠선계곡의 칠선폭포가 생각난다. 직벽을 올라 돌아서면 나무사이로 아름다운 칠선폭포가 탄성을 자아내는 비경으로 산객을 맞아주었다. 오랜만에 설악에 오니 떠오르는 추억도 너무 많다.

 

 

오늘 아침은 파김치를 곁들인 라면이다. 라면을 먹으며 문뜩 드는 생각, 이곳이 나의 별장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여름 태풍이 얼마나 강했는지 뿌리채 뽑힌 아름드리 나무들이 계곡에 누워있고 양폭대피소의 화장실도 아직 누워있다.

 

 

양폭대피소에서 올려다보는 만경대야 얘기하면 너무 촌스럽고 대피소 뒷편의 무명 암봉도 오늘은 하늘의 협연으로 더 없이 멋지다. 

 

 

양폭을 지나면서 만경대에서 내려서며 보았던 그 아름답던 붉은 단풍을 떠올리고 염주폭포와 천당릿지길을 떠 올린다. 

추억은 추억으로만 남을까? 언제 다시 만경대에 올라 단풍속에 하얀 포말로 흘러내리는 칠선폭포를 내려다보고 언제 다시 천당릿지길에 올라 비선대부터 외설악을 갈라 놓은 천불동 계곡의 위엄과 천불동 계곡 좌우로 도열한 그 수많은 암릉을 바라 볼 수 있을까?

 

 

천당폭포에 걸려있던 아름드리나무 뿌리가 올해 태풍과 호우에 말끔히 청소되었다. 문뜩 그 호우에  솓아져 내리던 폭포수를 상상한다.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는 한편으로는 무섭지만 너무 멋질거라는 생각을 한다. 참 쓸데 없는 상상을 한다.

  

 

 

천당폭포를 지나 무너미고갯길로 접어들자 단풍이 절정이다. 아마 설악의 단풍은 올해 조금 늦나보다. 매년 이맘때면 칠선계곡의 단풍이 절정이었는데... 올해 단풍은 예년에 비해 화려함이 떨어져 보인다. 긴 장마와 태풍에 단풍들도 지친탓일까?

 

 

무너미고개의 단풍이 그게 무슨 소리냐고 피를 토하는 붉은 단풍을 피우고 있다. 그래 단풍은 드는것이 아니라 피는 것이다. 어떤 예쁜꽃이 이처럼 예쁘게 피어나는가!

 

마치 오월의 어느날을 상상하게 한다. 모두가 붉게 물들거나 이미 잎을 떨구어 내고 겨울을 준비하는데 신록처럼 푸르게 빛난다. 혹시 연두색의 단풍일까?

 

 

옛공룡길을 따라 신선대를 오른다. 희운각 공사자재를 나르는 핼기의 굉음이 거슬리지만 가야동계곡과 건편의 대청봉을 바라보는 기분은 정말 신선이 된 기분이다. 대청과 중청, 그리고 소청은 이미 낙엽이 져서 겨울의 느낌이 물씬난다. 이미 오래전에 얼음이 얼었다는 소식을 접했으니 겨울은 정말 멀지 않은 곳에 와 있다. 언젠가는 한 번 죽음의 계곡을 다녀오고 싶었는데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유혹을 한다.

 

 

 

 

예전에 한 번 올랐던 신선봉을 오늘도 오르고 싶지만 왼쪽 허벅지가 심상치 않다. 아무리 4개월을 산행하지 않았고 아무리 올해 설악을 오지 않았어도... 어이가 없다. 녹이 쓰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가보다.

 

 

 

세상 모든 근심걱정이 모두 사라졌다. 이래서 그렇게 설악에 미쳤었는데... 설악에 미쳐보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미쳤다고 한다. 

 

 

 

 

 

신선대에서 바라보는 공룡은 표현 불가의 절경이다. 오늘은 가시거리가 유독 더 길어 온전한 공룡을 바라볼수 있다. 오늘 사실 공룡을 종주 할 생각은 없었다. 노인봉까지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노인봉도 포기하라고 허벅지가 신호를 보낸다. 노인봉에서 먹으려던 점심상을 이곳에다 차리고 주저 않는다. 늘 그랬던것처럼 삼겹살에 곁들이는 마가목주는 신선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점심을 먹고 정규등로로 내려선다. 공룡의 모습을 가장 잘 담아 낼 수 있는 곳, 대부분의 산객들은 그냥 달랑 사징 한 컷 남기고 훌쩍 지나가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공룡이야말로 찐 공룡의 모습이다. 오늘은 덤으로 가야동계곡 저 끝에 내설악 만경대와 안산의 모습까지도 선명히 보이니 더 이상 바랄것이 없다. 만경대에서 이곳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만경대를 바라본다.

 

 

 

 

신났다. 정말 신났다. 지난 겨울에는 혼자 이곳에서 셀카를 찍느냐고 난리를 쳤었는데...

 

 

 

이제는 배낭을 벗어버리고... 

평일에 설악을 오니 이 계절에도 이런 호사를 누릴수 있구나! 주말이나 휴일에는 많은 산객들로 가득차 엄두도 내보지 못했던 큰 호사라고 할 수 있다. 노인봉까지 가지 못하는 아쉬움은 일도 남아있지 않다.

신선이 따로 있지 않다. 신선봉에서 바람과 함께 놀고 있는 내가 지금 신선이 아니고 그 누가 신선이란 말인가?

정말 떠나기 싫은 신선대를 떠나 다시 무너미 고개로 향한다.

 

 

가끔 장난삼아 하지만 즉석에서 멘트를 하는 것이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가끔은 원고를 미리 준비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참회나무 열매의 껍질은 그 어떤 꽃보다도 예쁘게 가을을 박제하고 있다. 다시 돌아올수 없는 2020년의 가을은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다.

 

다시 만나 천당은 이미 대청으로 넘어가는 햇살을 이마에 걸치고 있다. 오후 햇살에 더 희게 빛나며 설악을 증명한다.

 

내려서며 만나는 오련폭포의 단풍과 목책다리가 또 다른 신선을 떠 올리게 한다. 

걱정했던 왼허벅지는 다행히 아무 탈 없이 버텨주었지만 제법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설악은 설악이다. 지난주 오대산을 다녀올때와 전혀 다르게 힘이 부친다. 늘 내가 함산하는 산우들에게 설악을 거리로 계량하면 안된다고 말했었는데 오늘 내가 제대로 체험한다.

 

다시 오랫동안 보관 될 추억을 오늘 다시 얻고 해지는 설악을 나서지만 아쉬움보다 행복이 충만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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