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평원의 철죽을 찾다!
일시 : 2021년 5월 8일 토요일
올봄은 유난을 떨며 지나간다. 봄이 유난을 떠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지만 올해는 그 어느해보다 빨리 봄이 찾아오더니 오월의 첫날에는 20cm 가까운 눈이 내리기도 하였다. 어제는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세찬 바람과 함께 내리고 지독한 황사가 찾아왔다. 네번이나 찾은 황매산 철죽을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어 이른 새벽 집을 나섰는데 어제 오후부터 찾아온 황사는 짙은 안개처럼 시야를 가린다.
이건 뭐지? 모산재를 지나는 순간 안개처럼 시야를 가리던 황사가 마술처럼 사라졌다. 7시반이 채 되지 않아 도착했는데 제1오토캠핑장 주차장은 이미 만차인지 들어서는 차들이 거북이다. 차를 돌려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서둘러 오른다.
먼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철죽이 아니라 운무였다. 합천호를 끼고 있는 황매산은 운무가 자주 찾아오는 산이지만 오늘은 어쩌면 절반은 황사일지 모른다. 오월의 산하는 신록을 닮아야 더 아름답다. 아내를 내려주고 나는 모산재로 돌아가 황매평원의 산철죽 군락지를 찾을 계획이었지만 아내와 함께 먼저 산철죽 군락지를 둘러보고 모산재를 오를 계획이었는데 아내와 같이 먼저 철죽을 둘러보고 내려가서 모산재를 오를 생각이다.
꽃마다 만나는 다른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철죽은 이른 아침에 만나는 것이 내 경험으로는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모산재에서 산철죽 군락지까지 2km 조금 넘어 짧은 산행시간이면 되지만 그 시간도 아까운 시간이다. 우리나라 3대 철죽 군락지는 소백산과 지리산 바래봉을 꼽는데 그중 이곳 황매산 철죽이 가장 먼저 만개한다. 그 이유는 가장 남쪽에 있기도 하지만 소백산과 바래봉 철죽과 이곳 황매산 철죽은 다르기 때문이다. 소백산과 바래봉 꽃은 철죽이고 이곳 황매산 철죽은 산 철죽이다.
매년 오월초에 열었던 황매산 철죽 축제가 올해도 코로나 19로 취소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철죽을 찾아 이른 아침 황매평원을 찾았다. 다행히 캠펭인탓인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쩌다 한두명이다.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데 윳십 중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나에게 길을 묻길래 "마스크 착용하시면 알려 드릴께요" 그녀는 서둘러 마스크를 착용한다.
며칠전 꽃샘추위에 냉해를 입은 꽃잎들이 안쓰럽지만 자연은 그런거다. 바람에 피기도 전에 꽃잎이 떨어지기고 하고 꽃잎에 눈이 쌓이기도 하는거다. 그래서 충분히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합천호의 푸른 물 속에 잠긴 산자락의 모습이 마치 호수에 떠 있는 매화 같다고 하여 수중매(水中梅)라고도 불리는 황매산(1,108m)은 나는 오늘 만날계획이 없다. 황매산의 황(黃)은 부(富)를, 매(梅)는 귀(貴)를 의미한다. 황매산은 철죽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의 멋진 조망도 있다고 유혹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철죽군락지에서 바라보는 모산재, 합천 팔경의 모산재가 신록속의 암릉을 감추고 나를 쳐다보는듯 하다. 오늘은 아내를 위한 산행이니 맘에 들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약 850m의 황매평원은 예전에는 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오토캠핑장을 만들어 놓고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고위평탄면 위에 약 300m의 뭉툭한 봉우리를 얹어놓은 듯한 모습의 황매산이 기암괴석들 사이로 녹음이 가득하다.
드넓게 펼쳐진 철죽 군락도 탄성을 부르지만 황사 없는 깨끗한 하늘이 다시 탄성을 부른다. 황사는 인간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것인지 이곳 황매평원같이 놓은 곳에는 올라오지 않고 산아래에 가득하다.
많은 철죽이 냉해를 입었지만 가끔은 냉해를 피해간 철죽을 만난다. 사람도 철죽처럼 어떤이는 건강하고 어떤이는 아프다. 어떤이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떤이는 불행에 치를 떨기도 한다. 다만 사람은 꽃과 다르게 많은 부분을 내가 선택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전망대에서 빤히 보이는 저산이 지리산 천왕봉이다. 이렇게 지척에 있었던가? 밥먹듯이 하던 무박 종주, 그렇게 올랐던 천왕봉이 이제는 추억속으로 사라졌다. 정말 큰 맘먹고 도전해야 천왕봉을 오를수 있다. 코로나 19 때문에 산악회를 이용 할 수 없어 지리산이 더 멀어졌다. 언제나 맘 편히 산을 찾을수 있을런지...
아내의 무릅이 괜찮다면 황매산 정상으로 향하겠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다. 하산 후 기적길을 오를 계획이기에 나도 무리해서 황매산 정상을 오르고 싶지는 않다. 몇년전 정상에 올라 금붓꽃을 만났던 기억이 새롭다.
수목원입구로 내려서는 길은 황매평원의 철죽 꽃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선물한다. 마치 바래봉을 걸어 올라가는듯...
기적길(돛대바위-용마바위-무지개터-모산재-부처바위-득도바위-순결바위-영암사지(4.4km) 산행은 황사로 포기하고 집으로 향한다. 합천팔경인 모산재를 오르지 못하고 돌아서는 아쉬움이야 크지만 황사에 덮혀 있는 그곳을 무리해서 오르고 싶지는 않다. 아내 말처럼 내년에는 오토캠핑장에서 1박을 하고 새벽에 오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