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야기

유명산, 그리고 벽계천

Edgar. Yun 2021. 8. 15. 07:12

일시 : 2021년 8월 14일 토요일

코스 : 주차장~휴양림~정상~벽계천~주차장

 

아내와 같이 산행을 하려면 몇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 너무 높거나 험하면 안 되고 산행 시간이 너무 길어도 안된다. 입추와 말복이 지났지만 아직은 무리해서 산행을 할 수 있는 계절이 아니기에 산행지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오늘은 어느 산을 갈까? 끝 더위가 남아 있으니 산행 뒤에 물놀이가 가능한 산이었으면 좋겠는데... 소리산도 나쁘지 않고 유명산도 괞찮다. 두 산 모두 집에서 멀지도 않고 물놀이가 가능한 계곡을 끼고 있다.

유명산으로 결정을 하고 이른 아침 집을 나선다. 하늘은 지금 당장이라도 비가 올 듯 어둡다. 일기 예보를 보니 오후 두 시, 소나기 가능성이 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을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맥주 두 캔과 물을 사서 산행을 시작하는데 휴양림 입구가 굳게 닫혀 있다. 9시에 문을 열어준다고 하니 돌아서 휴양림을 가로질러 산행을 시작한다. 며칠 전부터 아침 바람이 달라졌는데 이곳의 아침은 더 선선하다. 고도 600m의 잣나무 군락지가 정상으로 향하는 등로중에서 가장 가파르다.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능선으로 등로가 붙는데 가을 냄새 물씬한 바람이 불어온다. 어떡해 며칠 사이에 이렇게 바람의 색깔이 변할 수 있을까? 바람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더 행복하다.

 

 

 

 

유명산 정상에는 십여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쉬고 있다. 862m의 낮지 않은 산이지만 그렇게 보여주는 것이 많은 산은 아니다. 어쩌면 이름 덕을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가평의 연인산처럼... 1973년 엠포르 산악회의 진유명 씨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는 사실은 산을 다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옛 문헌에는 마유산이었다는 사실은 유명산이 유명해지고 난 뒤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도 유명산 정상에 서면 용문산의 주봉인 가섭부터 경기도의 마터호른이라 불리는 백운봉까지의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양평시와 남한강도 한눈에 들어오고 화악산과 명지산도 조망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린다.

 

 

연일 2000명대를 오르내리는 코로나19는 여전히 부담스러워 산객들이 몰려 있는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의자를 편다. 산객이 드문 곳이니 음악을 틀고 눈을 감으면 행복이 넘쳐난다. 졸참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지난여름을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얼린 홍시를 먹으니 그 어떤 아이스크림보다 맛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한 시간여를 머물다 의자를 접고 유명산계곡으로 향한다. 지도에는 벽계천이라고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계곡까지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고 험하다. 너덜길 옆으로 고로쇠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가을에 찾아올 화려한 단풍이 그려진다.

 

고로쇠나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커다단 물푸레나무도 군락을 이루고 산객들을 마중한다. 이렇게 키 큰 물푸레나무를 만난 적이 있었던가? 

 

 

계곡으로 내려서는 아내의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않다. 고로쇠나무 군락지를 지나면서 꽤 길게 너덜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합수점에서 계곡을 조금 더 거슬러 오르면 산객들도 거의 없는 예쁜 계곡을 만난다. 배낭을 벗고 작은 담으로 뛰어들어 땀부터 씻어낸다. 어쩌면 올해 마지막 알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의자에 기대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졸참나무의 잎새가 이렇게 내 영혼조차 자유롭게 흔든다.

 

어비계곡에서 이문세의 노래를 들으며...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휴식을 취한다. 시원한 바람을 사진에 담을 수 없으니 영상으로 담아야겠다. 몇 년 동안의 휴식 중에서 가장 행복한 휴식이다. 바람만이 계곡을 따라 찾아온다. 그리곤 행복하다는 생각만이 나를 감싸는 시간이다.

 

어비계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당소의 모습이다. 합수점에서 용소를 지나 박쥐소까지는 계곡도 등록도 까칠하다. 아주 날카로운 바위들이 이어진다. 2.7km의 거리가 5km는 넘게 느껴지는 거친 등로가 이어진다. 유명산을 쉽게 생각하고 올라왔던 산객들이 계곡을 힘들게 걸어 내려가는 이유다. 등로를 좀 정리하면 어떨까? 너무 많은 산객들이 찾아올까?

 

마음 같아서는 박쥐소로 당장 뛰어들고 싶다. 어비계곡에서 1분도 못 버티고 뛰쳐나온 내가 뛰어들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여름의 끝에서 찾은 어비계곡에서 오늘 하루 충분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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