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일 2022년 5월 28일
코스 : 용대리~백담사~영시암~만경대~오세암
아내가 오래전부터 오세암을 가보고 싶어 했다. 다섯 살 아이가 부처님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오세암의 전설은 교과서에도 실렸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낯설지 않다. 그래서 아내도 가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이번 주에 오세암을 가자고 했더니 불곡산을 지난주 두 번이나 다녀왔다. 사실 오세암은 설악산의 다른 코스들보다 짧고 쉬운 코스이다. 영시암에서 오세암 가는 길 중간에 오르막이 조금 있을 뿐이다. 아내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코스라고 생각한다.
원통을 지나 내설악 삼거리가 가까워지면 늘 멈춰서서 서북능선을 렌즈에 담았는데 오늘도 습관처럼 멈춰 선다. 오늘따라 안산의 암봉들과 치마바위가 선명하게 다가오며 유혹한다. 천 미터만 더 높았으면... 욕심이 지나친 걸까?
주차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차량들이 이미 주차되어 있다. 우리도 서둘러 주차를 하고 버스표를 구매한다. 매표소 입구 관광 안내지도에 강남 갔던 제비가 신혼살림을 차렸는지 연신 집을 드나든다. 첫차를 타고 싶어 했지만 첫차는 떠난 지 오래다. 9시 10분 차를 타고 백담사로 향한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계곡 도로는 인도를 구분 지어 놓아 걷기 좋을 것 같다. 둘레길을 개발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백담사를 찾을 거란 생각이 든다.
잠시 영시암에 들러 촛불공양을 했다. 이번에 시험 보는 막내의 합격을 기원한다. 종무소 보살님이 오세암 무주 스님에게 전해달라며 검은 봉투를 맡기신다. 가는 길이니 흔쾌히 받아 들었다. 봉투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영시암에서 오세암 가는 길옆에는 아름드리 전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얼마 전에 5,000년이 넘은 나무가 소게 되었는데 설악산의 전나무는 몇 살이 되었을까? 경이롭다는 생각밖에 없다.
쓰러진 전나무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길을 막아섰던 전나무는 장식품이 되었다. 만해 한용운이 수양하며 걸었던 그 길을 걸으니 나도 선각자가 될듯싶다. 아내가 오늘 더 힘들어한다. 백담사에서 영시암까지 조금 빠른 속도로 걸어 오버페이스가 되었나 보다. 힘들게 고갯마루에 오른 아내에게 만경대 만경대 가겠냐고 물으니 당연한 듯 가겠다고 답은하지만 갈수 있을지... 삼거리에서 만경대 오르는 길은 짧지만 만만하지 않다. 아내는 거의 기어오른다. 오랜만에 만나는 수수꽃다리 꽃을 따서 코에다 대주어도 반응이 없다. 힘들긴 힘든가 보다.예전에는 출입금지 표지가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만경대 표지가 보이지 않는다. 암묵적 개방인가?
만경대에 올라 먼저 오세암을 내려다본다. 예전보다 사찰이 많이 커졌다. 여기서 바라보니 오세암의 위치가 명확하다. 공룡의 끝인 마등령 밑에 자리 잡고 있는 오세암의 모습이 색다르게 보인다. 바라보는 위치만 달라도 설악은 또 다른 모습이다.
용아장성의 개구멍에 매달려 오세암에서 들려오는 독경소리를 들었던 추억이 새롭다. 이제는 다시 만들지 못할 추억이다.
만경대의 중앙부에서 바라보면 멀리 소청과 중청, 그리고 대청봉이 용아장성 너머로 보인다. 아내만 따라올 수 있다면 가야동 계곡을 걸어 봉정암을 가고 싶다. 가을에 걷는 가양동 계곡의 멋진 풍광을 보여주고 싶다.
아내가 만경대에 올라왔다. 만경대의 풍광에 힘을 얻었는지 컨디션이 조금 회복되어 보여 다행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설악의 풍광에 힐링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 아닐까? 아내가 공룡능선이 바라다보이는 암봉에서 포즈를 취한다.
나도 따라서 만경대의 풍광 속으로 들어간다. 어쩌면 다시 내설악의 만경대를 만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라는 것이...
가야동계곡의 천왕문이 하얀 얼굴로 유혹을 한다. 설악의 많은 계곡 중에서 가을에 가장 멋진 계곡중 하나이다. 단풍과 어우러진 가야동 계곡의 풍광은 설명하기 어렵다. 수렴동 산장에서 들어가면 쉽지만 들어갈 수 없다. 오래전에 가야동계곡을 내려오다 이곳에서 국공에게 적발된 적이 있었다.
용아장성을 당겨서 담는다. 설악에 미쳐 갈 때쯤이면 누구나 한 번은 가고 싶어 하는 코스이다. 설악산의 비탐방로중에서 가장 가고 싶어하는 코스이지만 코스가 위험해서 일 년에 두세 번은 사고가 나는 코스이다. 코스도 위험하지만 용아장성에 오를 때면 체력이 어느 정도 소진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어려운 코스다. 나는 서너 번 다녀온 뒤로 이제는 관심이 없다.
만경대에서 바라보는 공룡능선의 모습은 또 다른 공룡의 모습이다. 밥먹듯이 넘나들던 공룡이 이제는 내게서 너무 멀어진듯하다. 노인봉 아래의 암봉 밑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산솜다리가 보고 싶어도 선뜻 떠나지 못한다.
올해도 귀때기청의 털진달래는 곱게 피었을게다. 5월 10일이면 곱디곱게 피어나는 귀때기청의 털진달래를 보러 비박을 가겠다고 생각한 것이 10년이 넘었는데 아직 다녀오지 못했다. 언제 갈 수 있을까?
아내가 보고 싶어 했던 오세암에 도착했다. 영시암 보살님이 부탁하신 물품을 무주 스님에게 전하고 경내를 둘러본다. 무주 스님이 찾아오셔서 꽃차를 배달 왔으니 맛은 보고 가라고 하은은 하게 신다. 배낭에 넣지 말고 들고 가라던 보살님의 말씀은 꽃차가 부서질까? 걱정하신 마음이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국화차를 세잔이나 마셨다.
조금 전에 올랐던 만경대를 오세암에서 바라본다. 누군가가 내가 올랐던 바위에 올라 만경을 즐기고 있다.
아내는 오세암을 보고 나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산객들에게는 짧고 평범한 산행이지만 아내에게는 꽤나 힘든 일정이었는지 매우 힘들어했다. 다행히 하산길에는 조금 기력을 회복!